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경찰서 나오라는데 세 번을 거절하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최선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선욱 사회2팀 기자

최선욱 사회2팀 기자

귀성·귀경길 교통안전 현장 점검과 범죄예방 활동에 집중하며 추석을 보낸 경찰 주요 간부들은 연휴 내내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다섯달 가까이 수사해온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연휴를 앞두고 이를 검찰에 넘겨야 했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 지휘에 따른 결정이었다.

4월 말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관련 법안을 두고 국회에서 벌어진 충돌은 여야 간의 고소·고발전으로 이어졌다. 건설 현장에서나 볼 법한 ‘빠루’까지 등장한 사건에서 국민은 정치권 전체를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여야는 서로에게 잘못이 있다며 수사 기관에 책임 규명을 요구했다. 그 역할은 온전히 경찰의 것이 됐다.

피의자가 된 국회의원만 109명이다. 각 인물에 대한 수사보고서가 최소 수십쪽씩 만들어졌고, 국회 폐쇄회로(CC)TV와 방송사에서 협조받은 촬영물을 더해 모두 1.4테라비트(TB) 분량(영화 700편 용량)의 영상을 분석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물을 내지 못한 채 검찰 손으로 모든 자료가 넘어갔으니, 경찰 입장에선 마음이 불편한 게 당연해 보인다.

노트북을 열며 9/16

노트북을 열며 9/16

다만 경찰이 모든 본연의 책임과 역할을 다 했느냐는 의문도 남는다. 경찰은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98명의 의원에게 출석을 요구했지만 자유한국당 의원 59명은 모두 출석을 거부했다. 이 가운데 31명은 3차 소환요구서까지 받았지만 경찰에 나오지 않았다.

피의자가 된 일반 시민이 경찰 소환 요구에 세 번이나 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야당 일부 보좌진 사이에서도 “일반인 같으면 체포 사유가 될 수 있고 경찰이 출·퇴근길에 찾아와 임의동행이라도 요구했을 텐데 그런 건 없었다” “우리 의원은 눈도 끔쩍 안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 때문에 ‘야당 탄압’ 구호를 내세우며 수사에 협조하지 않은 의원들과 함께 경찰도 정치적 평가를 의식해 수사 절차 진행을 미뤄왔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경찰도 “소환 대상자들이 출석 요구에 불응해 수사가 늘어지면 국민 불신만 쌓일 가능성이 커 검찰 송치가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해당 의원들이 검찰 소환엔 응하거나, 검찰이 강제 절차 개시 등 수사와 관련한 나름의 결정을 내린다면 ‘지금까지 경찰은 왜 그러지 못했느냐’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국민이 수사 기관에 거는 기대는 ‘정치적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는 원칙에 따른 수사’다.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원칙에 부합하느냐’ 보다 ‘어느 정파에 유·불리한 영향을 주는지’를 따진다면 신뢰가 쌓일 리 없다.

최선욱 사회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