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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 반 날릴판…DLS ‘공포의 19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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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금융정의연대, 약탈경제반대행동, 키코공동대책위원회 등 경제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우리은행에 대해 '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S) 사기 판매 혐의' 고발하는 고발장을 접수하기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금융정의연대, 약탈경제반대행동, 키코공동대책위원회 등 경제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우리은행에 대해 '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S) 사기 판매 혐의' 고발하는 고발장을 접수하기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50대 주부 김영숙(가명) 씨는 추석이 지나고 다가오는 19일이 두렵다. 우리은행 직원이 "원금이 보장되는 연 4.2%의 대박 상품"이라고 소개해 3억원을 넣어둔 독일 국채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증권·펀드(DLS·DLF)의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지금 금리 추세가 유지되면 투자금의 절반 이상 손실이 예상된다.

19일 만기 도래, 투자자 피해 현실화 #우리·하나은행서 8000억원어치 판매 #증권사에서 10억 수준 파는 데 그쳐 #"원금 100% 손실 가능성에 반려해"

 김씨는 "은행에서 이렇게 위험한 상품을 팔지 상상도 못 했고 우리는 서류(투자설명서) 한장 받지 못했다"며 "아이들한테 평소에 돈을 아껴 쓰라고 잔소리를 했는데, 3억원을 몽땅 날렸다고 어떻게 얘기를 하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금리연계형 DLS 상품의 원금 손실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며 투자자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19일부터 독일 국채 10년물에 연계된 DLS의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이 판매한 DLS·DLF는 독일 국채 금리가 -0.2% 이상을 유지하면 연 4~5%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 밑으로 떨어지면 100%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원금 비보장형 상품이다. 금리가 -0.7%까지 내려가면 전액 손실을 볼 수 있다.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는 지난 3월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내려간 뒤 등락을 거듭하다 6월부터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8월15일에는 -0.711%까지 떨어졌다. 지난 13일 현재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는 다소 반등해 -0.445% 수준이다. 19일 만기 때 이 수준이 유지되면 전액 손실은 피할 수 있지만 투자 원금의 절반 이상을 까먹게 된다.

 이처럼 초고위험 상품이지만 제대로 따져보면 수익률이 대단한 수준도 아니다. 연 4.2%의 수익률을 내세웠지만 만기가 6개월이어서 1억원을 넣으면 6개월 뒤 210만원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여기서 선취 수수료 1.2%와 세금 등 각종 비용을 빼면 실제 손에 떨어지는 수익은 90만원 수준이다. 기대 수익이 연 2%대 예·적금보다 낮은 셈이다. 한 투자자는 "1억원을 넣으면 400만원가량이 나오는 상품인 줄만 알았다"며 "지난달 원금의 75% 손실 우려가 있다고 연락이 왔을 때야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토로했다.

 사실 선진국 금리 연계형 DLS 상품이 잘 팔린다는 소식은 지난해 말부터 금융투자업계에 퍼졌다. 은행보다는 투자 권유가 덜 보수적인 증권사 상품기획부에도 이런 보고가 들어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증권사에서는 판매 '부적합' 판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우리은행(4012억원)과 KEB하나은행(3876억원)은 해외금리 연계 DLS 상품을 8000억원 가까이 팔았지만, 증권사에서는 NH증권만 11억원 파는 데 그쳤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 판매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 판매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보통 증권사들은 새 투자상품을 제안받으면 상품기획을 담당하는 부서를 거쳐 리스크위원회의 최종 판매 결정이 내려지는데 선진국형 금리연계 DLS는 상품기획 단계에서 즉각 반려됐다"며 "고객들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아주 작은 데 비해 손실이 날 경우 원금 100%를 모두 까먹을 수 있는 상품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일반적인 주가연계증권(ELS)이나 DLS의 만기는 2~3년인데 비해 문제가 된 상품은 6개월로 지나치게 짧아 위험이 더 크다"며 "증권사보다 더 보수적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고객이 많은 은행이 그런 상품을 대규모로 팔았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우리은행은 독일 국채 금리가 -0.2% 밑으로 떨어지면 원금손실이 발생하기 시작되는데도 금리가 떨어지며 위험이 커지던 지난 3월 중순부터 5월까지도 해당 상품을 판매했다.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는 3월 초 이미 0~0.1%대에서 맴돌았고 3월 중순 이후 마이너스 금리구간으로 내려왔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위험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비이자 수익을 늘려야 하는 조직 논리와 금융상품 판매 성과가 인사 평가에 반영된 것도 이런 고위험 상품 판매가 이뤄진 요인으로 지적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사실 이번에 문제가 되지 않은 은행이나 증권사 모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난 20년간 독일 국채금리를 분석해 설계한 상품이 이렇게 될지 누가 알았겠느냐"고 말했다.

우리은행 측은 "최근 미·중 무역분쟁 완화 움직임 등으로 (독일 국채) 금리가 상승 추세로 바뀌어 손실률이 개선됐다. 다음 주에도 금리 상승이 기대된다"며 "영국 금리와 연계된 상품의 경우 대부분 원금이 회복됐다"고 설명했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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