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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한달만 살다 오래"…꼭 한달 후 떠난 치매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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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34)

‘연로해지는 아버지와 소주 한잔하는 것만큼 더 소중한 시간은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깨닫게 된 것이다. 15년 전 작고한 나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한 후 다소 경제력이 있던 어머니에게 얹혀살다시피 했다.

사교적인 아버지는 나갈 곳이 없어도 매일 아침 어딘가 집을 나섰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어떤 때엔 친구들과 한 잔 걸쳤기 때문인지 약간 취기가 있어 보였다. 주로 순댓국집에서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늘 보는 친구와 다방에서 온종일 하릴없이 시간을 감내하자니 지겨운 마음에 소주가 그리웠을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아버지는 “내가 한잔 살 터이니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세”라는 말을 못 한다. 그 대신 밥이나 먹자며, 둘이 이만 원에 술까지 해결하는 순댓국집으로 묵묵히 향했을 것이다. 반주라는 핑계로 소주를 시키지만 술이 목적이 되고 순댓국이 들러리가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는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 오늘 저녁 밖에서 식사하면서 술도 한잔 같이 하실래요”라고 청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굳이 돈 쓰면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괜찮으니 너희 식구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도록 해라”라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아버지가 아주 정색하며 손사래를 친 것은 아니지만 세 번쯤 비슷한 청과 완곡한 거절이 오고 간 후 나는 ‘술 한 잔’을 더는 청하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가 70세가 되었을 때 심근경색으로 인한 혈관성 치매가 왔다. 외관상 걷고 돌아다니는 데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의사소통이 어려워 더 이상 혼자 외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을 감내하던 다방과 순댓국집에서 친구들과 함께하는 대신 대부분의 시간을 아버지는 방에서 혼자 지냈다. 다행히 ‘착한 치매’여서 소리를 지르거나 남을 해코지하지는 않아 어머니가 혼자서 그럭저럭 수발해 왔다.

치매 아버지와 마지막 술자리

그러던 중 어머니가 미국에 있는 외삼촌 집을 방문하는 바람에 열흘쯤 집을 비우게 됐다. 아버지 혼자 지내게 할 수 없어 낮에는 아내가, 밤에는 내가 아버지 집에 와 있게 되었다. 어머니가 귀국하기 전날 밤 아버지와 집에서 조촐한 저녁을 마친 후였다.

“아버지, 저하고 밖에 나가 소주 한잔하실래요?” 아버지가 술을 좋아했다는 생각에 무심코 지나가는 말처럼 물어보았다. 잠시 뜸을 들이며 눈을 껌벅이던 아버지는 “그럴까?”라는 답으로 전혀 기대치 않았던 나를 놀라게 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옛날을 회상하는 듯 옅은 미소가 흘렀다.

마침 이날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활동하는 친구들과 아버지 집 근처 실내 포장마차에서 술 약속이 잡혀 있었다. 친구들만 허락하면 아버지를 술자리에 모시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친구들이 같은 테이블에서 기타도 쳐주고 흘러간 노래도 불러주면 아버지가 흥도 나고 옛날 생각도 날 것 같아서다. 친구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쾌히 모시고 오란다.

까칠한 수염으로 초췌해 보이는 아버지 모습이 마음에 걸려 먼저 이발소부터 모시고 갔다. 아버지를 이발소에 모시고 간 것도 난생처음이거니와, 이발소의 여성 면도사가 치매 노인을 반겨줄지도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를 이발소 앞에 잠시 세워두고 안에 들어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일단 안으로 들어와 보란다.

아버지의 이발과 면도를 해준 면도사는 눈물을 훔치며 언제든지 모시고 오라고 했다. 면도사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수십 번도 넘게 하더라는 것이다. [사진 pxhere]

아버지의 이발과 면도를 해준 면도사는 눈물을 훔치며 언제든지 모시고 오라고 했다. 면도사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수십 번도 넘게 하더라는 것이다. [사진 pxhere]

다행히 매몰차지 않은 여성 면도사 덕분에 아버지는 이발과 면도를 할 수 있었다. 가벼운 안마도 부탁하고 전화번호를 남긴 채 나는 친구들 모임에 먼저 합류하였다. 한 시간쯤 지나 이발과 면도가 끝났으니 모시고 가라는 연락이 왔다.

아버지는 훨씬 말끔해졌다. 안마도 잘 받아서 그런지 혈색도 좋아 보였다. 그런데 여성 면도사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아버지가 무언가 실수했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자분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사장님, 아버님 앞으로 언제든지 모시고 오세요. 제가 잘 대해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심스레 물었더니 안마를 하는 동안 아버지가 “정말 고마워요” “이렇게 잘해 주어 고마워요” 눈물을 흘리며 안마하는 내내 고맙다는 말을 수십 번도 넘게 반복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 같이 울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올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생겼구나 싶어 기분이 좋아졌다. 음악 하는 친구들이 모여있는 실내 포장마차로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내가 사전 공지를 미리 해서 그런지 모두 반갑게 일어나 아버지를 맞이해 주었다. 남자들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가수로 활동하는 여자 후배들도 있어서 분위기는 더없이 좋았다. 통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서서히 아버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함께한 술자리가 나와 아버지가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리낌 없이 술좌석을 가진 날이다. 이렇게 아버지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그전에 본 적이 없었다. [사진 pixabay]

친구들과 함께한 술자리가 나와 아버지가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리낌 없이 술좌석을 가진 날이다. 이렇게 아버지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그전에 본 적이 없었다. [사진 pixabay]

의사소통이 정상이 된 정도가 아니라, 치매 노인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언변이 좋아졌다. 목소리에 힘이 있고, 촌철살인 유머에 친구들이 자지러졌다. 마치 정치계에 몸담았던 40대의 아버지 모습을 보는 듯했다. 젊었을 때 아버지가 빙의돼 현재 아버지 몸에 들어간 것일까? 나는 담배를 안 피우지만 담배 피우는 젊은이들이 멋지다며 담배를 권하기도 하고, 통기타 연주에 노래가 끝나면 정말 잘 들었다고 등도 두르려 주고, 옆에 있는 내 친구와 진지하게 정치에 대한 담론도 논리적으로 펼치는 것이 아닌가?

이날이 바로 내가 아버지와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리낌 없이 술좌석을 가진 날이다. 그리고 이렇게 아버지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그전에 본 적이 없었다. 매실주 두 병을 비운 아버지는 적당히 취했지만, 행복해 보였다.

다음 날 저녁에 귀국한 어머님에게 인사도 할 겸 부모님 집에 갔다. 아버지는 전처럼 방에 혼자 있었다. 방문을 열자 아버지의 40대 빙의는 온데간데없고 70대 치매 노인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나를 본 아버지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천사를 만났어. 그런데 나보고 딱 한 달 만 더 살고 오래.” 그러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의 이중화법 헤아릴 줄 알아야

이젠 40대 아버지가 아닌 천사 빙의가 온 건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곤 정확하게 한 달 후 아버지는 거실에서 점심 식사 후 늘 혼자 머물던 방으로 걸어 들어가자마자 급성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어머니, 스타벅스 가서 커피 한잔하실래요?” 요즘 어머니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다. 매번 괜찮다고 하지만 억지로라도 모시고 나간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다. 부모님의 이중화법, 우리가 먼저 헤아려봐야 한다.

이한세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 대표이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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