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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도 밥을 같이 먹어야 식구가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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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33)

가족을 순우리말로 하면 식구다. 식구는 한 집에서 함께 밥을 먹는 이들을 뜻한다. [사진 pixabay]

가족을 순우리말로 하면 식구다. 식구는 한 집에서 함께 밥을 먹는 이들을 뜻한다. [사진 pixabay]

가족(家族)이란 단어가 친밀하게 쓰이지만, 일본식 한자라고 한다. 순우리말로는 식구(食口)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가족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되어 있다. 이에 반해 식구는, 먹을 식(食)자에 입 구(口)자를 써서 한 집에서 함께 밥을 먹는 이들을 뜻한다.

그렇다면 가족과 식구는 어떻게 다른가? 예전에는 가족은 혈연으로 연결돼 있고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한집에 살았으니 밥도 같이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이 식구였고 식구가 가족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달라졌다. 대가족이 무너지고 핵가족화되었다. 결혼하면 분가해 다른 집에서 사니 당연히 밥도 따로 먹는다. 같은 집에 사는 가족들조차도 직장동료나 친구와 어울리느라 저녁마저 외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기에 더해 혼밥족까지 넘쳐나고 있어 가족일지언정 식구가 아닌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을 시골의 조부모 집에서 보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포함하여 삼촌이 넷, 이모가 둘, 사촌 동생이 둘을 포함해 모두 열두 식구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저녁 먹을 시간도 잊은 채 어둑해질 때까지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놀곤 했다. 이때마다  집안일을 도와주던 누나가 학교 운동장까지 찾아와 철봉에 매달려 있는 나를 향해 “한세야 저녁 먹어 ~” 멀리서 소리를 질러댔다. 식구가 많다 보니 끼니때마다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것도 일이었다.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던 할아버지는 혼자 작은 독상을 받았고. 할머니와 삼촌, 이모, 사촌 동생들과  나, 이렇게 나머지 열한 식구는 두 개의 커다란 상에 둘러앉아 옹기종기 밥을 먹었다.

‘까칠까칠한 보리가 섞인 밥’ (왜 그리 보리밥이 먹기 싫었는지), ‘푸르딩딩하고 풀 죽은 김장김치’ (쓴맛이 꼭 한약 같았다), ‘기름은 떠 있는데 고기는 없고 무만 있는 고깃국’, ‘어쩌다 꽁치가 나오면 사촌 동생들과 싸울까 봐 한 토막씩 배급을 주던 할머니’,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예전엔 함께 살고 밥도 같이 먹었다. 가족이 식구였고 식구가 바로 가족이였다. [사진 pixabay]

예전엔 함께 살고 밥도 같이 먹었다. 가족이 식구였고 식구가 바로 가족이였다. [사진 pixabay]

그렇게 열두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를 하던 때가 50년 전 일이다. 현재 조부모는 진즉 돌아가셨고, 까까머리 중학생, 고등학생이었던 삼촌들, 간호사였던 이모, 18세쯤 되었던 도우미 누나, 모두 60~70대가 되었다. 그동안 자주 보지는 못했어도 늘 소식은 듣고 지냈다. 어쩌다 결혼식장 같은 곳에서 만나도 우리가 한때 허구한 날 하루 세끼를 같이 했던 식구였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낯설지 않았다.

어머니와 살림을 합친지 7개월이 되었다. 평소 그다지 말이 없는 나는 주로 식사시간 때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래서 가급적 주말에는 어머니와 하루 세 끼 식사를 같이한다. 밥을 같이 먹지 않으면 가족이기는 하겠지만, 식구는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식사 때 모든 대화의 90% 이상이 이루어지는데 이마저도 없다면 함께 살아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일이다.

어머니는 나와 아내의 외식이나 외출에 대해 한없이 너그럽다. 우리 부부가 일주일 내내 저녁 시간에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전혀 한 말씀도 하지 않는다. 토요일이면 부부끼리 나가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라고 등을 떠다밀 정도다.

그런데 서울에 사는 큰형 부부가 어머니를 뵈러 오는 날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큰형 부부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일요일을 이용해 일산으로 어머니를 뵈러 온다. 올 때마다 일산에 사는 작은형까지 불러 우리 삼 형제는 어머니를 모시고 밖에 나가 점심을 먹곤 한다.

평상시 우리 부부의 외출에 그렇게 너그럽던 어머니가 큰형 부부가 오는 날은 일주일 전부터 “너희 큰형이 이번 주 일요일 오니 어디 외출하지 말고 같이 점심 먹자!”라고 매일같이 노래를 부른다. 이미 일요일 다른 선약이 잡혀 있으면 어머니는 혹시 약속을 변경할 수 없느냐고 물어보기까지 한다. 나는 일주일 내내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데, 한 달에 두 번 어머니를 뵈러 오는 형 부부의 시간에 맞추어 나의 약속을 변경할 것을 은근히 원하는 어머니의 처사가 섭섭했다.

어머니의 바람도 있지만, 일요일 특별히 다른 약속이 많지 않아 우리 삼 형제는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어머니를 모시고 점심을 같이한다. 일 년이면 24번이나 된다. 여기에 명절과 아버지 제사, 어머니 생신, 어버이날을 합하면 우리 형제들은 일 년에 30번 정도는 밥을 같이 먹는다.

만약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면 과연 우리 형제들은 일 년에 몇 번 정도 같이 밥을 먹을까 생각해 보았다. 매월 두 번, 어머니를 뵈러 오는 큰형 부부의 발길이 끊어질 것이다.

가족모임의 구심점이 됐던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형제자매의 만남은 점차 줄어들게 된다. [사진 pixabay]

가족모임의 구심점이 됐던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형제자매의 만남은 점차 줄어들게 된다. [사진 pixabay]

그러면 추석과 구정,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제사, 이렇게 일 년에 네 번 모이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물론, 우리 형제들의 우애 정도에 따라 연간 만나는 횟수가 네 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다. 어떻게 해야 형제애가 더 돈독해질 것인가? 어머니는 그 해답을 형제들이 자주 밥을 같이 먹는 것에서 찾은 것 같다.

큰형 부부가 오는 시기가 조금이라도 뜸하면 어머니는 큰형에게 언제 오느냐고 전화를 건다. 전혀 평상시 어머니답지 않은 모습이다. 15년 이상을 혼자 독립적으로 지냈고, 살림을 합치기 전까지만 해도 가까이 살던 나와 아내에게 혹 부담이 될까 봐 1년에 전화 한 통도 먼저 안 하는 어머니였다. 그런데 2주 정도만 큰형이 안 오면, 어머니는 영락없이 언제 올 예정이냐고 큰형에게 전화를 건다.

몇 년이 지나서야 이렇게 어머니가 큰형의 방문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번은 식사 후 넌지시 “형제들끼리 같이 식사하니 얼마나 좋으니. 내가 죽은 후에도 너희들은 이렇게 자주 만나도록 해라.”라고 유언처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을 가족을 넘어 식구로 만들고 있었다.

가족도 밥을 같이 먹어야 식구가 된다.

이한세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 대표이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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