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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리비아모델' 추진 강경파 볼턴…트럼프, 전격 경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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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네오콘(신보수주의)’ 최후의 생존자이자 미국 외교의 수퍼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경질됐다. 1년 5개월 만이다.

북·미 실무협상 가속화 예상 #트럼프 ‘분담금 인상’ 입장 여전 #북한은 대미협상 ‘노마크 찬스’ #청와대 내부 기류는 환영에 가까워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어젯밤 존 볼턴에게 그의 직무가 백악관에서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통보했다”며 “행정부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많은 제안과 나의 의견은 아주 달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주 새 국가안보보좌관을 임명할 것”이라고 했다.

대북 매파인 볼턴의 경질로 북핵 문제와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 등 한국 관련 외교사안에도 여파가 미칠 전망이다.

볼턴은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조지 W 부시 대통령 등 공화당 행정부에서 꾸준히 중용된 ‘지략적 강경파’다. 2006년 10월 대북제재 효시 격인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 채택을 주도했고, 지난해 4월 국가안보보좌관 취임 뒤엔 선(先) 비핵화-후(後) 보상 식의 리비아 모델(북한은 선 무장해제 후 정권붕괴로 해석)을 추진했다. 올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빅딜’안이 든 서류봉투를 흔들며 판을 깬 것도 볼턴이었다.

볼턴을 “인간 오작품” “전쟁광신자”라며 맹비난해온 북한으로선 눈엣가시가 제거된 셈이다.

볼턴 떠나도, 그가 만든 ‘50억 달러 청구서’는 남는다

청와대는 “볼턴 경질에 대해 우리 정부가 얘기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청와대 내부 기류는 환영에 가깝다. 마침 이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열고 “북측이 9월 하순경 북·미 간 비핵화 협상 재개 의사를 밝힌 것에 주목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 조기 달성을 위한 계기가 되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톰 라이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탈레반과 이란, 북한, 심지어 러시아와 협상으로 선회하길 원했지만 볼턴은 방해만 했다”며 “이제 북한과 이란, 탈레반과 협상이 전속력으로 전진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도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트럼프 행정부가 아마도 북한에 비핵화 요구 수준을 낮추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포용정책을 펼 것 같다”고 전망했다. 북한으로선 분명한 호기다. “실무 협상 재개 의사를 밝힌 북한으로선 볼턴의 경질은 ‘노마크 득점 찬스’다. 기존의 기만술 등으로 밀고 당기기를 하며 공수전환을 꾀하려 할 것”(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최소한 ‘하노이 사태’가 재발하지 않을 거란 안도감에 실무협상이 속도를 낼 수도 있을 것”(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란 전망이 나온다.

방위비 문제와 관련, 지난 7월 방한해 50억 달러 청구서를 내민 인사가 볼턴이었다. 청구서 작성에 주도적이었다고 한다. 북한 이슈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틀어진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다시 얻기 위해 방위비 문제에 주력했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볼턴이 퇴장해도 미국의 태도가 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국의 분담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페이엣빌 선거 유세에서도 “많은 경우 이 나라(미국)를 가장 잘 이용한 것은 우리의 동맹”이라고 말했다. 방위비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동맹의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미국 우선주의를 또 표출했다.

볼턴의 후임으로는 폭스뉴스 터커 칼슨 쇼의 안보 분야 해설자인 더글러스 맥그리거 전 육군 대령과 로버트 오브라이언 대통령 인질 특사, 브라이언 훅 이란특별대표 등이 거론된다.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이름도 나오지만 북한과의 실무협상 개시를 앞둔 만큼 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한편 볼턴의 경질은 워싱턴 정가에서 트럼프 행정부 내 또 하나의 인사 시트콤으로 묘사되는 분위기다. 볼턴은 트럼프의 트위터 이후 12분 만에 자신의 트윗을 통해 “내가 어젯밤에 사임을 제안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내일 이야기해보자’고 했다”며 해고가 아니라 스스로 사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 등에 문자 메시지로 “내 유일한 걱정은 미국의 국가 안보”라고 주장했다. 미 언론들은 직접적 사임 원인은 지난 주말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을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 초청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계획에 반대한 것이라고 전했다. 백악관 참모는 물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직전까지 볼턴의 사임을 몰랐다고 한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유지혜·백민정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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