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기KT배왕위전'
<도전 5번기 제1국>
○ . 왕 위 이창호 9단 ● . 도전자 이영구 5단도전>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창호가 프로생활을 시작한 지도 어언 21년 째다. 나이는 만으로 31세. 그는 '바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란 질문에 언제나 알 듯 모를 듯한 침묵의 미소로 응대했다. 장년으로 접어든 이창호의 머릿속에서 바둑이란 존재는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정리돼 있을까.
6월 23일 아침 한국기원. 이창호 9단은 오늘 새로운 도전자인 이영구 5단을 맞이했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자를 상대해왔기에 이런 큰 대국도 그에겐 일상과 같다. 그러나 이영구는 오늘 난생 처음 도전기를 둔다. 전신에 서린 긴장감이 이영구의 두 눈을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돌을 가리니 이영구의 흑. 오전 10시 정각에 대국이 시작됐다.
포석은 느릿느릿하게, 그리고 점차 기이하게 흘러갔다. 이 9단의 백8이 변화의 시발이었던 것일까. 이 수는 '참고도'처럼 우변을 갈라치는 것이 오랜 상식이었지만 근래 백8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백8은 손 뺀 흑5를 악수로 만드는 데 주력한 수다. 흑9의 눈목자도 드문 수법이고 이후 서로 자기 진영을 지키더니 백18이 천원에 뚝 떨어진다. 검토실에 가득 모인 젊은 기사들 중 누군가 "꼭 순장바둑 같네" 한다.
박치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