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첨단단지 유치하려니 왜 쓸데없는 일 하느냐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사진=김상선 기자

"정부는 공기업이 뭐만 하려고 하면 통제하고 평가하려 한다. 공기업을 못 믿는 모양이다. 이래서는 아무리 유능한 전문경영인을 데려와도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이재희(59) 사장은 공기업 사장으로 겪는 어려움을 이렇게 요약했다. 취임 1년(7월 1일)을 맞아 본지와 한 인터뷰에서다. 유니레버코리아 등 다국적 기업의 CEO로 20년 넘게 활동한 이 사장은 공사가 공모 방식으로 뽑은 첫 전문경영인이다. 이 사장은 정부뿐 아니라 공기업 구성원들이 "답답하고 창의성이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인터뷰는 10일 그의 집무실에서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공기업으로 옮겨와 힘들지 않았나.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민간기업이냐 공기업이냐를 떠나서 힘든 건 항상 있다. 나는 프로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해결책을 찾는 게 내 임무다."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가장 큰 차이는 뭔가.

"민간기업은 CEO가 능력이 있다고 믿고 일을 잘할 수 있게 뒷받침해 준다. 공기업은 다르다. (공기업의 대주주인) 정부는 '공기업은 못 하거나 방만할 거라고 본다. 그래서 자꾸 통제하고 평가하려 한다. 이런 풍토에서는 나보다 유능한 CEO가 와도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정부가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

"공기업을 연구하는 교수나 법률을 만드는 공무원이 몰라서 그렇다. 그들은 제대로 된 경영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래서 능동적으로 일을 하려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결국 규제나 규정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정부 때문에 일이 제대로 안 된 사례가 있다면.

"'패스트트랙(1, 2등석 승객의 출입국 수속을 간편하게 해주는 제도)' 도입이 대표적이다. 영국 히스로 공항 등 세계적인 공항이 시행하는 제도로 고객을 편안히 모시기 위해 갖춰야 할 기본이다. 그런데 다른 기관들에서 위화감 조성이니 특권층 양성이니 하면서 반대하더라. 호텔에 10만원짜리 방도 있고 500만원짜리 방도 있듯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는 게 옳지 않은가. 이런 걸 위화감 조성이라고 할 수 있나."

-다른 사례는.

"공항 발전을 위해 주변에 각종 첨단 산업이나 패션 산업단지를 유치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정부 부처들은 물론 지자체까지 나서서 간섭을 한다. 심지어 기획예산처나 감사원은 '인천공항이 비행기만 잘 뜨면 되지 왜 이런 쓸데없는 일들을 하느냐'고 하더라."

-내부 문제도 적지 않을 것 같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답답하고 창의성이 없다. 직원들이 공무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규정이나 제도만 따질 때다. 어떤 때는 그것에 의존해 일을 피하려고 한다는 느낌도 든다. 감사원 감사나 각종 평가가 복지부동을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어느 정도인가.

"인천공항 터미널과 신축하는 탑승동을 지하로 연결하는 전철이 있다. IAT라는 것이다. 내가 좀 더 쉬운 이름을 짓자고 했다. 그랬더니 얼마 전에 세 장짜리 보고서가 올라왔다. 계약규정이 어떻고, 이름 새로 지으려면 자문위원회 구성해야 하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뭐 이런 내용들이더라. 한마디로 하지 말자는 거였다."

-앞으로 가장 역점을 둘 분야는.

"우선은 내부 문화를 바꾸기 위해 온몸으로 싸우고 있다. 창의적인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규정에 집착하지 말고 법이 문제면 바꾸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10년, 20년 동안 안 해본 것이라서 시간이 몇 년 걸릴 것 같다."

강갑생 기자 <kkskk@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