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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고대생들, 조국 임명에 "이제 촛불들고 광화문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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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이 9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조국 법무부 장관이 9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9일 오전 각종 의혹에도 불구하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장관에 임명되자 대학가에서는 허탈함과 분노를 표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조 장관 딸(28)의 장학금 특혜 수혜 논란 및 입시 비리 의혹이 불거졌던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의 학생들은 이번 임명을 규탄하고 검찰 조사를 응원하고 있다.

이날 오전 11시 30분 문재인 대통령이 조 장관의 임명을 재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에는 이를 비판하는 글이 수십개 올라왔다. 입시비리 의혹을 받고있는 조 장관 딸의 모교인 고려대는 이를 비판하는 촛불시위가 세 차례 열린 곳이다. 이용자 A씨는 “조국 임명하면서 원칙과 일관성을 운운하다니”라는 제목의 글에서 “현재 본인들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미사여구를 갖다붙여 미화시키고 있다”며 조 장관의 임명을 비판했다. 이어 “과거 보수 정당은 지역감정을 악용했고, 현재 진보 정당은 진영 감정을 악용한다는 한 논평이 일면 통쾌하면서도 너무 부끄럽고 무력감을 자아낸다”고 토로했다.

이용자 B씨는 “조국 임명 전까지는 그래도 이 정부를 지지했지만 오늘 더불어민주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이번 임명은 대통령의 약속과 상반된 것”이라며 “이게 대통령이 말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것이냐”며 비판했다.

“학교를 벗어나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가겠다”는 의견도 다수 보였다. 다음 집회는 주변 대학들과 연합해 광화문에서 하자는 게시글에는 “정부가 강행한 이상 이제 학교 내의 시위는 무의미하다”, “광화문에서의 시위가 의미가 있다. 그분들(정부)은 학교에서의 시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 같다”는 댓글이 달렸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의혹에 항의하는 서울대(왼쪽)와 고려대(오른쪽) 학생 집회. 우상조 기자,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의혹에 항의하는 서울대(왼쪽)와 고려대(오른쪽) 학생 집회. 우상조 기자, [연합뉴스]

서울대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이용자 C씨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청문회에서 의혹이 해소되지도 않았는데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며 “이제는 시국선언을 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다른 이용자 D씨는 “한국에서 도덕성 문제를 우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현실 인식이 망상급”이라며 “결국 조국을 끌어안고 진보 세력이 침몰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3차 집회 머릿수 줄면 안됩니다”라며 “재학생 믿고 졸업생 안 오면 안된다”고 촛불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글도 올라왔다. 서울대는 이날 오후 6시 조 장관의 임명을 반대하는 세번째 촛불집회를 앞두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달에도 조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두 차례 열린 곳이다.

조 후보자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분이고, 그의 딸은 2014년 이 학교 환경대학원 재학 때 장학금을 부당하게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87년 이후로 이어져 온 개혁파의 명분은 끝났다…명분 없는 시대" 

앞서 “(조 장관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에 직결된 문제로 이해한다”라고 쓴소리를 했던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조 장관의 임명 직후에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최 교수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전쟁이 벌어진 한 중간에 무장하지 않은 시민이 그 사이에 들어가는 격이라 이번 사태에 논평하지 않으려 한다”며 “아마 (추후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는 이날 블로그에 올린 논평에서 “조국 이후 시대의 특징은 명분이 없는 시대”고 분석했다. 우 박사는 “격차 해소ㆍ불평동 완화 등은 ‘당위성’이지만 그런 정도의 당위성은 MB도 얘기했고, 박근혜도 얘기했다. 당위성이 있다고 그냥 명분이 생기지는 않는다”며 “대중, 특히 청년의 지지가 없는 당위성에는 명분이 생기지 않는다”고 평했다. 이어 “87년 이후로 이어져 온 개혁파의 명분은 이제 끝났다. 10대ㆍ20대가 그것을 명분으로 인정하지 않는 순간, 87년 체계의 명분은 끝났다”며 “남은 건 법무부를 비롯한 행정 절차이다. 그 행정의 방향을 위해서 10대와 20대를 ‘우리’ 속에서 버린 것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고 했다. 또한 “현 정권은 사회적 격차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서 뭔가 해소하려고 하는 것 같지 않다”며 “사회는 사법 개혁보다 큰 개념인데 사법개혁에 사회개혁의 우선 순위가 밀리는 것을 보는 일은 고통스럽다”고도 전했다. 각종 비리 의혹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사법 개혁의 적임자’라며 조 장관을 임명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한편 조 장관의 임명을 반기는 의견도 나왔다. 한 고파스 이용자는 “청문회 등 적법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임명을 지지한다”며 “개인적으로 불만인 사람들은 민주 시민이라면 내년 (총선 때) 투표로 응징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권유진ㆍ이태윤ㆍ이병준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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