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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머릿속을 엿보는 쾌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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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호 21면

책 속으로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푸른숲

중국 대표 소설가 위화의 산문집 #혈기 방자한 독서 편력 및 작가론 #클래식 음악과의 비교 분석 눈길 #“문학의 지속성과 방대함에 빠져”

소설가가 쓴 산문집은 관음증을 자극한다. 소설이 소설가에 의해 창조된 세계라면, 산문에는 그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혹은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위화(余華·59)가 자신의 이름을 알린 『인생』(1993)과 『허삼관 매혈기』(1996) 등을 펴낸 직후인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쓴 글들을 모았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혈기 방자한 지적 분출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독서 편력기이자 작가론인데, 그것을 음악과 연결한 대목이 흥미롭다.

문화혁명 후반기인 1974년 무렵 중학생이었던 작가는 어느 날 문득 ‘인쇄된 노래’인 악보에 매료당한 경험을 고백한다. “단숨에 사랑의 힘으로 나를 잡아끈 음악”은 그의 글쓰기에 크게 영향을 미쳤는데, 이를테면 바흐의 ‘평균율’과 멘델스존의 ‘마태오수난곡’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술을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클라이맥스’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과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가 “상대의 서술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는, 서로를 응시하는 거울 같다”고 지적한다.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위화. [중앙포토]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위화. [중앙포토]

높낮이가 제각각인 소리가 여러 악기에서 동시에 연주될 때의 그 화성(和聲)이 참 부럽다는 작가는 그러나 독서에서도 화성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서라는 행위에 자기만의 경험과 느낌이 더해져 머릿속에서 거세게 일렁이는 물결이 만들어지지 않느냐는 얘기다.

그는 할도르 락스네스의 ‘청어’와 스티븐 크레인의 ‘소형 보트’ 그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 덕분에 비로소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고백한다. 이유는 “그들로 인해 문학의 지속성과 광대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지속성에 대한 이야기는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후안 룰포의 『뻬드로 빠라모』에 감명 받아 『백년의 고독』을 쓰게 된 사례로 이어진다.

소설 분석도 눈에 띈다. 『천일야화』가 우리를 매료시키는 비밀 중 하나는 ‘전환’을 아주 매끄럽게 하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후속 전개 및 클라이맥스에서 탄탄한 서술과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사실적 디테일과 합리적 서술로 풀어냄으로써 동시에 구축한 신비한 나라와 현실의 나라의 경계를 독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는 점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무심한 경지에 이른 윌리엄 포크너의 글이 가진 ‘정확성과 힘’에 대한 찬사,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 ‘와시’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의 살인장면 비교를 통한 죽음의 묘사 분석 역시 눈길을 끈다.

작가는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지나쳐 우쭐함에 평상심을 잃어버린 ‘견해’는 진부해질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몽테뉴의 말을 인용한 대목은 이렇다. “왜 우리 자신의 견해가 늘 모순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어제까지는 신조였다가 오늘은 거짓말로 전락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정형모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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