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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존슨 연설 중···실시간 탈당 후 야당석 앉은 보수당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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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카야가 보리스 존슨 총리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뒤에 숨어 있고, 존 버커우 하원 의장(오른쪽)과 여왕의 사이에 브렉시트호가 침몰하는 그림을 들고 서 있다. [AP=연합뉴스]

아티스트 카야가 보리스 존슨 총리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뒤에 숨어 있고, 존 버커우 하원 의장(오른쪽)과 여왕의 사이에 브렉시트호가 침몰하는 그림을 들고 서 있다. [AP=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오후 영국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의 하원 회의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연설하는 동안 의원 한 명이 보수당 의석에서 일어나 반대편을 향해 걸어갔다. 보수당 소속 필립 리 의원이 향한 반대편은 야당 의석이다. 그가 야당 의원들 사이에 자리를 잡으면서 집권 여당 탈당이 이뤄졌다. 한 석으로 의회 과반을 유지하고 있던 보수당의 집권 연정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연설하던 존슨 총리는 당황스러워했고, 야당 의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노 딜 브렉시트 불사 존슨에 여당서도 반발 #필립 리 의원 탈당으로 범야권이 한 석 많아 #노 딜 금지, 3개월 추가 연장 법안 표결 예정 #존슨 "통과되면 총선"…여왕까지 엮여 혼란 #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브렉시트로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영국 의회에서 기이한 광경까지 연출되고 있다. 존슨 총리가 10월 31일 아무런 합의 없이 결별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고 밝힌 이후 찬반 대립이 격화하면서다.

이날 탈당한 리 의원은 성명에서 “집권 보수당 정부는 원칙 없이 국가에 피해를 주는 브렉시트를 추진하고 있다. 국민이 삶이 위험에 처하게 하고 연합 왕국인 영국의 통합을 제멋대로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U 잔류파인 그는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자유민주당(LibDem)에 입당했다.

보수당 소속이던 필립 리 의원(오른쪽 두번째)이 하원 의사당에서 반대편 야당 석으로 걸어가 자유민주당 의원석에 앉아있다. [EPA=연합뉴스]

보수당 소속이던 필립 리 의원(오른쪽 두번째)이 하원 의사당에서 반대편 야당 석으로 걸어가 자유민주당 의원석에 앉아있다. [EPA=연합뉴스]

영국 하원의원은 650명인데, 표결권이 없는 의장 등을 제외한 639명의 과반은 320명이다. 리 의원의 탈당으로 보수당 연정은 319석으로 줄었다. 노동당 등 야권 의원이 320명으로 한 명 더 많아졌다.

과반이 무너졌다고 해서 존슨 내각이 바로 붕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산술적으로 과반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의회 표결에서 원하는 방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 특히 의회가 존슨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처리하려 할 경우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현 정부의 존립이 흔들리고 있다.

리 의원의 이적은 야당과 일부 보수당 의원들이 노 딜 브렉시트를 막기 위해 시작한 법안 통과에 결정적으로 힘을 실었다. 존 버커우 하원의장은 이날 노 딜 브렉시트를 막기 위한 의원들의 긴급 토론을 허가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이번이 10월 31일 노 딜 브렉시트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오늘 반드시 행동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존슨 총리가 여왕에게 제안해 다음 주부터 하원이 10월 14일까지 장기간 문을 닫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반대 시위대가 존슨 총리의 하원 장기 정회 조치를 비난하며 '쿠데타를 멈추라'는 표지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브렉시트 반대 시위대가 존슨 총리의 하원 장기 정회 조치를 비난하며 '쿠데타를 멈추라'는 표지를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토론 후 하원은 의사일정 주도권을 하원이 행사하는 방안에 대해 표결을 할 예정이다. 통과되면 범야권과 일부 보수당 의원들이 마련한 노 딜 브렉시트 방지 법안을 4일 표결하게 된다고 BBC 등이 전했다. EU 정상회의가 열린 직후인 다음 달 19일까지 정부가 EU와 브렉시트 합의를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노 딜 브렉시트에 대해서는 의회 승인을 거치도록 하는 내용이다. 정부가 합의도 못 하고 노 딜 승인도 못 받으면 브렉시트를 내년 1월 말까지 3개월 추가 연장하도록 했다.

존슨 총리는 하원이 이런 법안을 통과시키면 다음 달 14일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경고했다. 총선을 치르려면 하원 의원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코빈 노동당 대표는 총선을 치를 준비가 됐다고 밝혔지만, 노동당 의원들은 총선보다는 노 딜 브렉시트를 막는 게 먼저라는 입장을 밝혔다.

존슨 총리는 이날 하원 회의에 앞서 야당과 노 딜 브렉시트 반대에 동참한 보수당 의원들을 설득했지만 15명가량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고 BBC가 보도했다. 존슨은 반기를 드는 보수당 의원은 당에서 쫓아내고 총선 공천도 하지 않겠다고 압박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해당 의원들은 “개인이나 정당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이 우선"이라고 반응했다. 존슨 총리는 “또다시 브렉시트 연기를 브뤼셀에 요청하는 것은 백기를 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제러미 코빈의 항복 법안"이라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AFP=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AFP=연합뉴스]

야당 등은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경제에 심각한 피해가 오고 식품과 상품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뿐 아니라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국경 문제가 발생한다고 우려한다. 반면 브렉시트 강경파는 혼란은 짧은 기간에 그칠 것이며 세밀하게 대비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존슨이 제안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승인한 하원 장기 정회 조처는 법정에서 다뤄지고 있다. 여왕은 정치적 중립을 표해야 하므로 총리의 요청을 거부한 전례가 없지만, 여왕에게 이를 제안한 존슨 총리는 불법이라는 소송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보수당 소속 존 메이저 전 총리도 대법원에 하원 정회가 잘못됐다며 법적 판단을 구한 상태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AFP=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AFP=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브렉시트 논란에 왕실이 휘말리는 것을 극도로 꺼리면서 현 정치권이 제대로 국정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한 것으로 일부 언론이 전했다. 이런 그의 희망과 다르게 브렉시트 논란은 영국 왕실까지 소용돌이로 끌어들였는데, 존슨 총리가 이를 주도했다. 하원에서 범야권과 일부 보수당 의원이 노 딜 브렉시트를 막는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여왕이 법안에 서명하지 않는 식으로 막아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브렉시트파 사이에 나왔는데, 1700년대 이후 여왕이 특정 법안에 서명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고 BBC는 전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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