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불이익' 항의한 학부모 교사에 대한 배려는 왜 못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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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작가 펄벅 여사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살아온 한국인의 삶의 모습에서 서양인과는 다른 우리만의 따뜻한 심성을 발견하고 한국을 무척 사랑하게 된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 한국에 방문한 펄벅 여사는 어느 시골길을 걷다가 우연히 한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 농부는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가면서 자신도 지게에 짐을 지고 가고 있었다. 우리로서는 일상적인 모습이었지만 펄벅 여사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이런 경우 자신이 지고 있는 짐과 지게를 달구지에 싣고 자신도 달구지를 타고 편하게 가는 것을 당연시한다. 이것이 서양인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소의 짐을 덜어주고 함께 짐을 나눠지면서 같이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서양인의 눈에는 그 모습이 집에서 기르는 말 못하는 짐승에게도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우리네의 심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광경으로 비쳤다. 짐승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배려하는 우리네 심성을 보여주는 이야기 중에는 황희 정승 고사도 있다. 누런 소와 검은 소 중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하냐고 묻는 말에 농부가 뛰어와서 귓속말로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잘 알려진 일화다.

이처럼 우리는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 것이 아니라 짐승이 느끼는 감정과 기분까지 배려하면서 살아온 민족이다. 그러니 가족과 이웃, 주변사람들을 어떻게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왔는지는 더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모습은 과연 그러한 배려심과 이해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반문해보게 된다. 상대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이해, 그로 인한 타협과 양보는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서구식 합리주의로 포장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모든 행동의 척도가 되고 있다.

이러한 이기주의적 행태는 자녀교육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자기 자식이 학교생활에서 조금이라도 피해를 봤다 싶으면 어김없이 달려가 삿대질을 해대는 학부모들의 이야기는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짐승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애완견에게로 전이된 것일까.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은 극진히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자녀를 가르치는 교사에 대해서는 조그만 배려와 이해심도 보이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자신의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난다 싶으면 학교나 학원으로 달려가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내고, 시정을 요구하는 부모들의 행동은 대부분 서구식 합리주의로 포장되어 있다. 그들은 그것이 소비자 주권시대의 정당한 소비자 권리이며 요구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실상은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발로인 경우가 허다하다.

교육에 있어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필요하다. 가진 자와 지도층에게 필요한 도덕적 의무인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아니라, 진정으로 자녀의 교육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마땅이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와 가치관을 말한다. 그래서 종종 자녀 교육에 있어서 훌륭한 가치관과 자세를 가진 학부모를 보면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된다.

자녀에게 타인과 친구를 배려하고 때론 양보하고 물러서는 것을 가르치는 부모, 교사의 인간적인 실수를 발견했을 때 교사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부모, 자녀의 실패에 조바심을 갖고 이곳 저곳을 전전하지 않고 깊은 신뢰와 애정으로 자신감을 잃지 않게 해주는 부모 등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을 간직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짐승에 대한 배려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함께 배우며 동고동락하는 친구와 교사에 대한 배려심과 존경심 없이는 어떠한 교육열과 교육기관도 아이를 훌륭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분명한 사실이다. - 이기엽 워릭영어학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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