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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분양가 상한제 강행, 주택시장 왜곡 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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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정부가 신규 분양 아파트의 높은 분양가를 통제하기 위해 민간 택지에서도 분양가 상한제 적용 준비를 마쳤다. 이에 반발한 80여개 재개발·재건축사업 조합들이 다음달 6일 서울 광화문에서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 소급적용 저지를 위한 대규모 시위를 하기로 했다. 이들은 야간 촛불집회를 열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재건축 연기·포기하는 단지 늘듯 #공급 확대와 수요 분산이 해법

국토교통부는 투자 수요가 집중된 강남권 재건축의 가격 불안과 신축 아파트의 가격 상승에 놀라 서둘러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내년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의 정치적 배경도 깔린 듯하다. 지금 미·중 ‘패권 전쟁’에다 한·일 무역 갈등까지 터진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대외 환경이 매우 어려운 형국이다. 잇따른 세금 인상 등으로 내수 경제도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굳이 민간택지에까지 분양가 상한제를 강행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묻고 싶다.

정부는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 적용 기준을 바꿨다. 이전에는 필수요건이 ‘주택 가격 상승률이 직전 3개월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는 경우’였다. 이번에는 ‘주택 가격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보다 현저히 높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으로 확대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서울 25개 구 전체를 비롯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 과천·하남·광명시와 세종시, 대구 수성구 등 전국 투기과열지구 31곳이 모두 해당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의 지정 효력은 일반 주택사업의 경우 지정 공고일 이후 최초로 입주자 모집 승인을 신청한 단지부터 적용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경우에는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신청한 단지부터 적용하게 돼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일반 주택사업과 동일한 최초 입주자 모집 승인을 신청한 단지부터로 일원화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재개발·재건축사업 단지들이 일반분양분을 후분양으로 돌려놓은 상태에서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기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된다.

이미 관리처분을 했다면 이주를 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아직 일반 분양분을 분양하지 않은 단지는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수익이 감소하거나 어쩌면 추가 부담금까지 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관리처분인가를 받지 않은 단지들은 사업을 연기하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매 제한 기간도 지금은 3~4년 정도이지만 앞으로 전매 제한 기간을 인근 주택 시세 대비 분양가 수준에 따라 5~10년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여기에 토지비 산정기준은 취득원가에다 은행 정기예금 이자율 정도만 가산하기로 했다. 여기에 분양가 심사위원회의 명단과 회의록까지 공개한다니 심사위원들은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정부는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쉽게 해놓고 적용 시기와 지역만 기다리고 있다.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통해 정부가 인위적으로 분양가격을 낮추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택가격이 왜 오르는지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공급이 부족하거나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따라서 공급이 필요한 지역에는 재개발·재건축 사업 등을 통해 공급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래도 가격이 오르면 수요를 분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매번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마다 규제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백보 양보해 정부가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를 굳이 시행하려면 지역별·물건별로 가격이 급등하는 지역에 한정해 시행해야 한다.또 시장이 안정되면 곧바로 해제해 주택시장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규제가 많아지고 적용 기간이 길어지면 부동산 시장은 또다시 왜곡될 것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