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열풍 주식폭락 지불중지 대만 경제 풍요속 "몸살"|무역흑자 관리 소홀 지하경제 번창 금융공황 징후…은행법 통째로 바꿔|세계경제의 「모범생」이 「문제아」로…타산지석 삼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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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무역혹자로 넘쳐나는 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대만이 지하금융시장 번창, 부동산·증권투기, 은행법개정, 주가폭락이라는 「풍요 속의 몸살」을 앓고 있다.
실물경제의 덩치는 가속적으로 커지는데 낙후된 금융제도가 이를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한 결과다.
대만 입법원은 지난달 은행금리의 완전자유화·민간은행 설립제한 완화·지하금융기관 규제강화·외국은행규제 완화 등을 골자로 하는 은행법개정을 의결했다.
금융의 자유화·국제화를 골간으로 하는 새 은행법이 통과되자 대만의 주식시장은 거의 전 종목이 하한가를 기록하며 곤두박질, 주가지수는 올 들어 최고 치였던 지난 6월 19일의 1만1백5보다 무려 2천1백75포인트가 낮은 7천9백30수준까지 떨어졌다.
또한 2백여개의 지하금융기관마다 예금인출소동이 벌어져 일부 지하금융회사는 예금지급을 중지시키는 최악의 상태까지 갔다.
그 같은 충격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만정부가 은행법을 통깨로 뜯어고치게 된 것은 그간 대만경제가 사상 유례없는 부동산·증권투기의 열풍에 휩쓸려왔기 때문이다.
86년 연평균 9백44였던 대만의 주가지수는 올 6월 1만선을 돌파했다. 3년간의 주가상승률이 1천%를 넘은 것이다.
또 대북시의 부동산값은 대만정부의 공식조사결과 지난 한햇동안만 지목에 따라 30∼2백50%까지 뛰었다.
아시아는 물론 세계의「모범생」격이던 대만경제를 그 같은 투기경제로 몰아넣은 주범들은 바로 7∼8년전부터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던 지하금융회사(Deposit Taking Company)들이었다.
단순한 금융중개업허가를 받아 회사를 차려놓고는 공금리인 연리 9%보다 훨씬 높은 월 4∼10%의 금리로 시중의 부동자금을 끌어모아 이를 부동산과 증권에 쓸어 넣어 굴려온 이들 지하금융회사들은 은행법 개정직전에는 하루 주식거래량의 3분의 1정도를 좌우하는 「큰손」들이었다.
더구나 이들은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을 대는 정가의 「큰손」으로도 등장, 그간 대만 행정부가 몇 차례 시도하던 은행법 개정을 번번이 좌절시켜 왔었다.
이처럼 지하금융회사들이 판을 치게 된 근본 원인은 역시 대만의 금융·자본시장이 실물경제와는 괴리된채 낙후되어 있었다는데 있다.
금리를 통제하고 외국은행의 진출이나 국내은행의 설립을 제한하고 있는 상태에서 무역흑자로 넘쳐나는 시중 통화를 제도금융이 제대로 흡수할 수 없었으며, 경제의 덩치에 비해 자본시장도 크게 뒤쳐져 있었다.
대만은 전통적인 가족경영체제 등에서 비롯된 기업공개 기피현상 등으로 상장기업수가 우리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국영기업이 주축인 10대 기업이 총 상장주식의 58%를 점유하고 총주식의 27%를 정부가 갖고 있으며 개인보유주식중에도 상당수는 소수의 전주가 움켜쥐고 있는 상황이다.
그 같은 상황에서 투기자금화한 뭉칫돈들을 제도권으로 흡수하고 자유경쟁을 통해 낙후된 금융산업을 끌어올린다는 취지의 대만의 새은행법은 금리의 완전자율화·민영은행설립제한완화등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대만은 또 외국은행에 대해서도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 97년으로 예정돼있는 홍콩조차기간만료에 맞춰 대만을 국제금융센터로 만든다는 야심찬 계획도 반영시키고 있다.
외화를 많이 벌어들이는 것 자체는 부러운 일이지만 세계 제2의 외화보유국으로서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진통을 겪고 있는 오늘의 대만은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는 내일의 한국에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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