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전 퇴사 권고' 글 쓴 간호사 해고…法 "부당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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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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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 그런 쪽으로 잘 아시는 분~~ 정말 화가 나요.”

2018년 요양원 간호사로 일하던 A씨는 회사 측으로부터 뜻밖의 말을 듣고 인터넷 카페에 이런 제목의 게시글을 올렸다. 당시 A씨는 두 달 뒤 출산휴가와 육아 휴직을 쓸 계획이었는데 회사 측이 “육아 휴직 등은 인건비 부담이 있어 이달 말쯤 그만두면 좋겠다”고 알려 온 것이다.

A씨가 거부하자 요양원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시설 입장도 생각해 달라. 방법을 찾아보자”라며 대화를 끝맺었고 답답해진 A씨는 인터넷 카페에 글을 썼다.

문제는 A씨가 쓴 글을 요양원 측이 알게 되면서 생겼다. 요양원 측은 “A씨 글 때문에 악덕 기업으로 몰리는 등 명예가 훼손됐다”며 A씨를 해고했다. A씨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 해고가 부당하다는 재심 결과까지 받았지만, 이번에는 요양원 측이 법원에 재심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법원 "해고는 지나치게 가혹하다"

법원은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이 있는 사유가 있어야 해고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A씨에게 해고라는 징계는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것이다.

법원은 A씨가 쓴 글의 구체적 내용을 근거로 들었다. 요양원 측이 A씨에게 ‘육아휴직을 쓰지 않고 퇴사했으면’하는 바람을 내비친 것은 사실이고, A씨도 글을 올릴 때 “(회사 측이) 결론은 안 내고 생각해 보자는데”라며 확정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힌 건 아니라는 취지로 글을 썼다.

또 A씨가 쓴 글은 대체로 출산휴가나 육아 휴직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며 만약 요양원이 퇴사를 강요할 때 대처 방안을 묻는 내용이었다. 댓글 역시 요양원을 언급하기보다는 실업급여나 고용노동부 상담을 조언하는 내용이 주로 달렸다.

서울행정법원 12부(재판장 홍순욱)는 “A씨가 문제가 생긴 뒤 스스로 글을 삭제했고, 글 내용 등에 비춰보면 게시글로 요양원이 입은 피해가 막심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부당 해고라고 판결한 재심 판정은 적법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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