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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도망가는 것도 호신술"…이스라엘 격투기 고수의 팁

중앙일보

입력

최하란 대표는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스쿨오브무브먼트'에서 셀프 디펜스를 가르친다. 체육관 내부에 밥 말리의 노래 가사를 인용한 '삶은 당신의 권리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이병준 기자

최하란 대표는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스쿨오브무브먼트'에서 셀프 디펜스를 가르친다. 체육관 내부에 밥 말리의 노래 가사를 인용한 '삶은 당신의 권리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이병준 기자

#한낮의 길가, 누군가 흉기를 허리춤에 들이밀며 “시키는 대로 하라”고 위협한다. 이때 가장 안전한 선택지는.

1. 괴한의 팔을 꺾거나 명치를 가격해 제압한다.
2. 괴한의 어깨를 쳐 흉기를 떨어뜨린다.
3. 도망치며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한다.
4. 일단 시키는 대로 하며 도망갈 기회를 엿본다.


#출근 시간대 붐비는 지하철, 누군가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계속한다. 이때 가장 안전한 선택지는.
1. 팔을 꺾거나 명치를 가격해 제압한다.
2. 손을 비틀고 놔주지 않는다.
3. 상대를 노려보고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한다.
4.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다.

이스라엘 무술 ‘크라브 마가’(Krav Maga)를 활용한 자기 방어술을 가르치는 최하란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는 위 두 물음에 대해 모두 선택지에 없는 답을 얘기했다. 그가 꺼낸 답은 “상황에 따라서”다. 다양한 상황에서 위협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정답이란 건 있을 수 없다는 게 그의 답이다.

최 대표가 가르치는 자기 방어술은 상대방을 때리거나 제압하는 데만 집중하지 않는다. '자신을 안전하게 하기 위한 모든 행동'이 자기 방어술이라는 게 그의 철학이다. 위험한 상황과 장소를 빨리 벗어나는 것도 자기 방어술에 포함된다.

최 대표는 크라브 마가를 연마하는 국제협회 중 하나인 KMG(Krav Maga Global)에서 가장 높은 국내 등급을 지니고 있다. 그는 경찰 임용 예정자를 가르치는 중앙경찰학교에서 ‘여성·약자를 위한 호신술’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최 대표를 그가 운영하는 서울 합정동 체육관에서 최근 만나 자기 방어술에 관해 물어봤다.

최하란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가 셀프 디펜스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병준 기자

최하란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가 셀프 디펜스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병준 기자

"도망가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최 대표의 자기 방어술 제1목표는 '피신(避身)'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도망가는 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며 "피신에도 방법이 있다. 어느 쪽이 대로변인지, 어느 곳에 사람이 더 많은지, 어디로 도망쳤을 때 상대를 따돌릴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도망가는 것도 순발력 있는 선택이 필요한 일종의 전략이란 얘기다.

그는 이어 “많은 폭력 피해자들이 ‘왜 그때 더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지 못했지’ ‘왜 더 저항하지 못했지’ 하며 자책하는데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면서 “피해자들은 그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다. 약하거나 강하지 않아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는 패배자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의 자기 방어술은 극단적 상황보다는 뺨이나 머리를 맞는 등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에 대응하는 방법에 무게를 두고 있다. 최 대표는 “우리는 ‘폭력’ 하면 대부분 뉴스에 나오는 살인이나 납치, 성폭력과 같은 상황을 떠올리지만 가장 많이 발생하는 폭력은 사회적인 위계를 이용해 상대를 복종시키거나 순응시키려 하는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최 대표의 수업에서는 뺨이나 얼굴을 보호하기 위한 모의 상황 훈련이 이뤄졌다. 방어자는 두 손을 앞에 모은 자세 혹은 손을 얼굴 높이까지 올린 방어 자세에서 그대로 팔을 움직여 상대의 손을 막고 뒤로 물러나며 "진정하라"고 외친다.

공격자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공격에 임하면 공격자의 어깨나 명치 등을 빠르게 친 뒤 몸을 피한다. 그는 "폭력을 당하는 순간이 없으면 좋겠지만, 직면하게 된다면 상대의 시나리오에서 벗어나 상대를 당황시키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최하란 대표의 '스쿨오브무브먼트' 체육관 내무 모습. 이병준 기자

최하란 대표의 '스쿨오브무브먼트' 체육관 내무 모습. 이병준 기자

6살 어린이부터 60대까지 관심

최 대표의 수업을 듣는 수강생은 20~30대가 가장 많지만 6세 어린이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외부 강연도 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과는 놀이식의 훈련을 한다. 모르는 어른이 데려가려고 하는 일종의 상황을 가정한 뒤, 안전한 사람에게 뛰어가는 훈련이 대표적이다.

그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안 돼요' '하지 마세요'는 알고 있는데, 실제로 역할극에서도 그런 상황이 닥치면 얼어붙는다"며 "이 같은 두려움을 없애는 훈련도 내가 가르치는 것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민원담당 공무원이나 사회복지사 등으로부터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일상에서 위험을 피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물었다. 최 대표는 "위험 상황에 처했을 때 '에고 파이팅'(ego fighting)을 버리라"고 답했다.

그는 "'네가 뭔데 나한테 그러냐'는 태도를 버리고 무엇이 더 안전한지 분석하는 게 우선"이라며 "상대가 얼마나 흥분했고, 이 대립과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면 될지,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는 게 나은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또 "강력한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사람의 몸은 굳고 생각은 멈추게 된다. 그 사람이 못나서가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며 "이 경우 '진정해라' '그만해라' 등 단순하고 명료한 명령을 하면 효과가 좋다. 말을 하면 자기 생각을 밖으로 표출했다는 효능감도 느낄 수 있고, 조력자를 만들기도 쉬워서 상대도 예측하지 못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상대를 오히려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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