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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안팎서 견제"···주미대사 문정인→이수혁 막전막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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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대사에 내정된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주미대사에 내정된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주미 대사에 내정했다. 이 내정자는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이 직접 영입한 인물이다. 2017년 6월 비례대표 순번을 이어받아 배지를 달았지만,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내정자는 청와대가 지명 사실을 발표하자 기자들과 만나 주미 대사를 “한ㆍ미 관계의 야전 사령관”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1975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외교부 차관보와 독일대사, 국가정보원 제1차장을 지냈다.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활동했고, 2003년에는 북핵 6자회담의 초대 수석대표를 맡는 등 외교부 핵심 라인에서 대미 관계와 북핵 이슈를 두루 접했다. 이 내정자는 “(20년 전) 워싱턴 정무참사관으로 발령됐는데, 그동안 북한 핵 문제는 더 악화했다. 이제 미국이 우리에게 미치는 역할은 한반도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미ㆍ중 관계와 대북관계, 대일 정책까지 굉장히 다원화ㆍ다층화됐다. 잘 분석해 국익을 위한 최선의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 내정자는 급부상한 인물이다. 전날 점심 무렵까지만 해도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주미대사 기용이 유력하다고 알려졌으나, 오후 늦게부터 기류가 확 바뀌었다. 이 때문에 기자들과의 문답에선 인선 시기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다른 분이 물망에 올랐는데 연락이 언제 왔나?
“어제오늘 해서 임명하겠나. 꽤 됐다.”
구체적인 시점은?
“지난주 초다.”
한미와 북미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데 어떤 역량이 필요한가
“야전사령관처럼 해야 한다. 전에 참사관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더 긴밀하고 다양한 인사들을 접촉하면서 실타래 같이 엉킨 한반도, 동북아 문제에 대해 협상해나가겠다.”
야당에선 문재인 정부의 외교력 부재를 지적한다.
“흠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야당의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하겠다.”

그의 말처럼 '이수혁 카드'는 급부상한 것 처럼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선 움직이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애초 문 특보와 이 내정자 두 분을 복수로 검토했다"고 인선과정을 밝혔다. 그런데 "문 특보가 고사하면서 ‘지금의 (국내외에서 하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서로(문 대통령과 문 특보)에게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전에 (이 내정자와는 대사지명을) 충분히 협의했다. 비례대표 의원 사퇴에 대해서도 흔쾌히 승낙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요약하자면, 어제 급하게 결정한 게 아니라 지난주부터 주미 대사 후보로 두 사람을 동시에 검토하다가 문 특보가 고사하면서 이 내정자를 확정해 이날 발표했다는 설명이다. 문 특보와 이 내정자 모두 문 대통령 곁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온 대표적인 외교·안보 참모다. 누가 되더라도 이상할 건 없다는 의미다. 다만 문 특보가 고사한 배경에 대해선 다양한 얘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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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특보가 직접 밝힌 고사 이유는 “곧 있으면 일흔(현재 68세)인 데 굳이 미국에까지 나가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할 일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문 특보가 그간 ‘학자로서의 소신’이라고 전제하긴 했지만 한ㆍ미 동맹이나 주한 미군에 대해 정부의 입장과 다른 목소리를 자주 낸 데다, 야당에서도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던 점이 부담을 느꼈을 거란 관측이 많았다. 최근에 문 특보와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는 한 학계 인사가 전한 말도 비슷하다.

“깊은 속사정까지 알 수는 없으나 문재인 정부 ‘안팎’에서 그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적잖았다. 문 특보는 ‘내가 그런 것까지 다 감내하면서 주미 대사를 나가야 하느냐’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실제로 청와대에서 ‘검증을 하겠다’고 알렸을 때, 하지 말라고는 안 했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고사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안다.”

미국이 문 특보에게 거부감을 가졌을 가능성에 대해 이 인사는 “한 나라의 외교관, 그것도 대사 후보자에 대해 아그레망(사전동의) 절차를 밟기도 전에 가타부타 의사를 전하는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 채널의 공식적인 반응이 아니라 미국의 비공식적인 기류가 국내로 전달됐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란 말도 돈다.
권호ㆍ이우림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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