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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좋은가타협위한남의말도(13)|내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6공화국이 들어서고 본격적인 노사분규가 시작되던 지난해 가을 택시기사 강모씨는 택시노조의 파업결정에도 불구하고 일을 나왔다가 파업운전사들에 의해 몰매를 맞는 봉변을 당했다.
강씨는 이날부터 서울택시노조가 파업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굳이 시민들의 발을 묶는 파업까지 강행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에 차를 몰고나왔는데 잠실역 부근을 지나다가 마침 시위중인 파업운전사들과 맞닥뜨렸다.

<택시기사의 봉변>
강씨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돌세례를 피해 얼른 차를 돌려 잠실대교를 지나 성동구청앞까지 3km를 도망쳤으나 봉고차를 타고 쫓아온 파업운전사들에게 붙잡혀 차유리창이 박살나고 두들겨 맞기까지 했다.
이바람에 강씨의 택시에 타고있던 20대 여자승객은 파업운전사들이 던진 돌에 뒷머리를 맞아 전치2주의 상처를 입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 사고에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비슷한 시기 경남 창원공단의 A회사에서는 근로자들간에 화염병을 던지는 격렬한 충돌로 근로자 20여명이 다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선파업」을 주장하는 근로자들이 「선조업」을 주장하는 근로자들을 회사의 앞잡이라고 매도하다가 급기야 자기들끼리 치고 박는 사태까지 치닫게 된 것이다.
엊그제까지만해도 동고동락한 동료였고 앞으로도 미우나 고우나 한솥밥을 먹어야할 동료들끼리 그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하나만으로 하루아침에 극과극으로 갈라서 버렸다.
「네다리는 좋고 두다리는 나쁘다」는 동물농장의 네발짐슴들처럼 자기와 다른것은 무조건 악이란 발상에서 나온 행동들이다.
이른바 흑백논리다.
6월초 김대중평민당총재가 총선이후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했다.
김총재는 이날 연설장소인 교육대학정문앞에서 시위중인 학생들의 방해로 1시간여동안 입장을 하지 못한채 『보수연합 획책하는 김대중은 각성하라』는 구호를 들어야했다.
김총재는 학생들앞에 나서 『제1야당의 총재로서 여러분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생각하며 정치를 해야한다』고 했으나 학생들은 계속해서『노태우퇴진』과 『김대중각성』만을 부르짖었다.
결국 실력으로 입장을 하기는 했으나 좌든 우든 온건론자보다는 강경론자들이 판을 치고 타협을 위한 모색은 곧잘 회색분자의 변절로 매도되는 우리 정치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면이었다.
같은 야당끼리도 한 야당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대안을 제시하고 여당과 대화를 모색하면 다른 야당은 이를 「야합」이라고 비난하며 「고춧가루」를 뿌리기 일쑤다.
최근의 교원노조문제도 흑백논리적 시각에서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어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힘들다.

<상대감정만 자극>
문교당국과 전교조 가운데 어느한쪽이 「일대양보」를 하거나 여론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한 「전교조 불허」와 「전교조사수」라는 흑백의 줄다리기는 더욱 극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이럴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사태를 가슴죄며 지켜보는 학부모와 학생이 될수밖에 없다는 것을 양자 모두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인상이다.
흑과 백만 있지 도무지 중간이 없다.
통일문제도 흑백의 핑퐁게임만 계속되고 있는 느낌이다.
극단적 통일지상주의와 반공주의라는 두개의 거대한 주장사이에서 통일을 바라는 순수한 열정도, 급진적 접근방식을 경계하는 합리적 시각도 도무지 발디딜 틈이 없다.
문익환목사의 방북이후 한국자유총연맹이 내놓은 유인물은 문목사방북이 실정법의 테두리를 어떻게 넘어섰고 과연 그의 방북이 통일에 도움이 되느냐는데는 일언반구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민주인사 문익환, 알고보니 간첩』 『남칩부추기는문익환을 처단하라』는 극단적이고 원색적 언어로만 일관하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전대협대표자적으로 평축에 참가한 임수경양은 북한의 40년 독재체제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비판도 없이 우리체제만을 비난하며 현정권을 미제국주의자의 앞잡이로 규정했다.

<명분 중시 풍조>
김동일 교수(이대·사회학)는 『흑백논리는 인간의 인지능력발달단계에서 모든 사물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가장 초기단계의 수준』이라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명분론을 중시하는 유교문화의 뿌리가 아직도 깊게 깔려있어 흑백논리가 좀처럼 굽힐줄 모른다』고 진단했다.
그는 흑백논리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교육밖에 없다며 『사물을 여러 시각에서 볼수 있는 능력을 어려서부터 길러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진교수(서울대·사회학)는 『흑백논리는 오랜 세월 지속된 우리나라의 통치방식이었고 그에 대항하는 세력쪽에서도 흑백논리가 발견된다』며 『그같은 흑백논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국민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갑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교수 역시 흑백논리의 극복방안으로는 교육을 제시했고 『아무런 제약없이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진실에 접근할수 있는 능력을 교육을 통해 배양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이년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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