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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日 고노 비서관 출신 이성권 “자민당에도 무역보복 납득 못하는 의원 있다”

중앙일보

입력

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외무상은 한국에서 무례(無禮) 논란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국면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을 향해 “닝겐(人間·인간)”이라 칭하고,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에게는 통역이 끝나기도 전 “조또마테(ちょっと待って·잠깐 기다리라)”라며 말을 가로채는 장면이 목격됐다.

인터뷰|‘일본통’ 이성권 전 의원

그는 한때 지한파(知韓派)로 꼽히곤 했다. 2015년 행정개혁담당상으로 아베 내각에 입각하기 전의 일이다. 그가 1993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한 고노 료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의 아들인 데다, 중의원 의원 시절에는 한국 초·재선 국회의원과 교류가 잦았기 때문이다. 그는 의원실 보좌진에 한국인을 채용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자국이 한국에 제안한 '제3국 중재위원회'의 설치 시한(지난달 18일)까지 한국이 답변을 하지 않았다며 지난달 19일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오른쪽)를 일본 외무성에 초치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과 남 대사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자국이 한국에 제안한 '제3국 중재위원회'의 설치 시한(지난달 18일)까지 한국이 답변을 하지 않았다며 지난달 19일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오른쪽)를 일본 외무성에 초치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과 남 대사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고노 의원실’ 한국인 직원으로 일했던 이들 중 한 명이 이성권 바른미래당 정치연수원장이다. 17대 국회의원(한나라당 소속) 출신인 그는 주 고베(神戶) 한국총영사(2012~2015년)를 지냈다. 일본 정부·의회 인맥을 다수 보유한 ‘일본통’이기도 하다. 이 원장은 지난 6일 중앙일보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최악으로 치닫는 한·일 관계에 대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는 “일본 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아베 정부의 논리에 따라 내부 통제 없이 그대로 노출돼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며 “내가 알기로는 일본 여당(자민당) 내에서도 아베 정부의 경제조치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는 의원들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언론 보도를 보면 ‘일본 정치권=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크게는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여야 모두) 스펙트럼이 다양합니다. 한국 입장을 이해해주거나, 적어도 한국은 왜 그런지 이유를 인식해줄 수 있는 의원들이 많아요. 그러나 아베 정부의 구심력이 워낙 크다 보니 아베 정부가 생산하는 논리와 정보에 그대로 노출되고,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겁니다.”

이성권 바른미래당 정치연수원장. [뉴스1]

이성권 바른미래당 정치연수원장. [뉴스1]

이 원장은 정부 입장이 강경할수록 다양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일본의 여야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야 한다면서 ‘의원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그런 의원들을 만나지 않으면 한국에 대한 왜곡된 정보가 그대로 유통된다”며 “의원끼리 자주 만나야 그런 분위기를 ‘톤다운(tone down·누그러뜨리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꺼내 든 단어가 ‘평형수’였다. 평형수란 배 밑바닥에 채우는 물로, 배가 급하게 방향을 틀거나 외부의 충격이 있을 때 균형을 잡아 복원력을 확보하는 기능을 한다.

“한·일 사이에는 여태껏 그랬던 것과 같이 (앞으로도) 정부 간 갈등과 대립이 항상 있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김종필 전 총리와 2000년대 초반 한·일 소장파 의원들의 교류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양국의 갈등과 대립을 완화·조정하는 의원외교가 활발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평형수의 역할을 하는 게 양국 의원들의 몫입니다. 아쉬운 점은 그렇게 할 만한 (외교적 역량을 보유한) 인적 자원이 점점 사라져 간다는 사실이죠.”

이 원장은 그 이유를 “한·일 양국의 주류가 전전(戰前) 세대에서 전후(戰後) 세대로 전환되며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586’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는 중국·북한에 더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일본의 ‘586’ 세대는 과거 한국 식민지배를 경험한 아버지·할아버지 세대보다는 한국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적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특히 “일본 전후 세대는 한국과 활발히 교류하면서도, 한편으로 ‘과거 식민지 시절의 잘못은 우리가 한 게 아닌데, 우리를 향한 너무 많은 비판이 계속된다’ ‘나름대로 우리(일본)도 국제사회 속 지위가 있는데, 그만큼 실력 발휘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그런 인식이 일본 보수의 국가주의적 태도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유엔 총회에 참석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뉴욕 파커 호텔에서 만나 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유엔 총회에 참석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뉴욕 파커 호텔에서 만나 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이 원장은 “일본 정부 측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현재 국제사회 여론전의 공격수로 나선 고노 외상도 일본에게 한국이 중요하단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지한파였던 고노 외상이 왜 변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는 “한국에 기대를 많이 했던 일본 측 인사일수록 본인들이 희망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보이지 않으면 더 실망하는 듯하다”며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뒤집히는 것을 보면서 실망감을 느낀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문제에 대해 한국이 (한·일 양국 기업이 공동기금 조성하는) ‘1+1’ 안을 제안했는데, 한국 정부의 결정으로 해산 절차를 밟고 있는 화해·치유재단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본 내에 있다”며 “싸우더라도 대화로 한국 정부의 논리를 전파하러 다니는 ‘부대’가 필요한 데 여태 그걸 안 한 점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이성권은 누구?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이성권 바른미래당 정치연수원장은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한나라당 박관용 의원실 비서관으로 일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 와세다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일본 정치권의 핵심을 현장에서 보겠다”는 생각으로, 2001년부터 2년 동안 고노 다로(河野太郎) 당시 중의원 의원의 비서관으로 근무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됐을 때는 고노 의원이 동아일보 칼럼으로 공개 축하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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