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성형·학교까지 '뒷거래 해결사'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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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친하지도 않은 고위직과의 친분과시 등 허세 수법은 브로커들이 단골로 쓰는 방법이다. 박종근 기자

서울 대치동의 주부 박모(35)씨는 올 초 딸(7)을 사립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브로커 덕을 톡톡히 봤다. 서울의 39개 사립초등학교는 매년 12월 추첨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하지만 복수 지원을 막기 위해 추첨일을 같게 하고 추첨장에 부모와 자녀가 함께 입장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친척 소개로 만난 브로커는 박씨에게 "한 곳에 지원하는 데 세 명이 필요한데, 한 사람당 25만원을 주면 여러 군데 지원을 해주겠다"고 제의했다. 가짜 학부모가 박씨를 대신해 자녀 사진과 비슷한 외모의 어린이를 데리고 다른 추첨장에 들어가면 복수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씨는 세 학교에 원서를 냈고 그중 한 곳에서 당첨됐다.

'브로커 문화'는 우리 사회에서 익숙한 풍경이 됐다. 법조계를 흔들고 있는 김홍수(58.수감)씨처럼 사건 해결을 미끼로 활개 치는 법조 브로커뿐 아니라 관공서 민원을 해결해 주는 이권청탁형 브로커 등 각종 브로커가 일상에 퍼져 있다.

◆ 다양한 생활 브로커=경매 정보, 사채 조달, 병원 입원, 학원 등록 등을 알선하면서 수수료를 받는 브로커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서울 동부이촌동의 주부 김모(42)씨는 지난달 여성 전용 찜질방에 갔다. 처음 보는 중년 여성이 다가왔다. 그러곤 "얼마 전 성형외과에서 얼굴 주름 제거 수술을 받았는데 정말 잘됐다"며 한참 자랑을 늘어놨다. 알고 보니 그 여성은 병원에 고객을 알선해 수수료를 받는 브로커였다. 한 성형외과 관계자는 "의료법상 병원 광고가 제한되다 보니 고객 유치를 위해 브로커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붐을 타고 재개발 브로커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돈만 주면 자격이 없어도 재개발 입주권을 받아 주겠다며 서민들을 유혹하고 있다. 융자가 많은 집에 전세를 놓아 주겠다며 수수료를 받아내는 브로커는 수도권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권 규모가 커지고 수법이 복잡해지면서 단체로 활동하는 브로커도 나타났다. 2003년 의료사고가 발생한 수도권의 A병원에선 4~5명의 의료사고 브로커가 팀을 이루고 나타나 억대의 합의금을 요구하며 매일 시위를 벌였다. 결국 참다못한 병원 측이 이들을 경찰에 고발해 폭력혐의로 입건됐다.

◆ 번듯한 직함으로 치장=브로커의 명함엔 항상 그럴 듯한 직함이 적혀 있다. 검찰 관계자는 "브로커들은 대개 컨설팅.건설사.투자사의 대표나 ○○협회 회장, 관변 단체 위원 등의 직함을 7~8개씩 갖고 있다"고 전했다. 또 많은 브로커는 특수전문대학원에 들어가려고 기를 쓴다. 고위층 인사와 자연스럽게 학연을 맺고 학력으로 상대의 신뢰를 얻는 효과를 얻기 때문이다. 최근 부산시 교육청 공무원들에게 "학교 시설물 공사 과정 비리가 검찰 수사 대상인데 검찰 간부에게 잘 말해 주겠다"며 14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된 브로커 김모(42)씨의 경우 공무원들 앞에서 검찰에 전화 거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실제로 검찰 간부와는 일면식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려대 평화연구소 조승민 연구원은 브로커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를 ▶정책 결정 과정이 투명하지 않고▶정보가 불균형적으로 몰리며▶사회 시스템이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규제학회장을 맡고 있는 한성대 이성우(행정학과) 교수는 "광고가 제한된 의료.법률 시장은 유난히 브로커가 많다. 과도한 규제로 정보 접근이 왜곡돼 정보를 지닌 브로커들이 자라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철재.정강현.김호정 기자 <seajay@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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