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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25>"30% 이자 사채 강요한 조폭···못 갚으면 개목걸이 채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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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지난 6월 6일 대구시 중구의 성매매 집결지 속칭 자갈마당 철거를 위해 잡동사니를 한 곳에 모아둔 모습. 한쪽 벽면에 매트리스 등 침구류가 눈에 띈다. 송봉근 기자

지난 6월 6일 대구시 중구의 성매매 집결지 속칭 자갈마당 철거를 위해 잡동사니를 한 곳에 모아둔 모습. 한쪽 벽면에 매트리스 등 침구류가 눈에 띈다. 송봉근 기자

옐로하우스 여성들과 대화하다 보면 업주에게 착취당했다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된다. 키우는 강아지가 아플 때 급전을 빌려줬다거나 “이모들이 번 돈으로 밥 먹으니 고맙게 생각하라”며 업주 가족들과 겸상하게 했다는 일 정도가 그들이 말하는 업주와의 좋은 기억이다. 업주가 자신의 가족들과 여성을 한 상에서 밥 먹게 하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한다.

포주에게 착취당했다는 여성 #조폭에게 돈 뜯겼다는 포주 #철거로 업소 닫자 업주들 불법행위 폭로

업주들은 “착취라는 건 다 옛날 일이다. 오히려 업주가 아가씨들 눈치를 봐야 한다”고 항변한다. 과거 옐로하우스에서 성매매 업소를 운영했다는 한 여성은 “‘옐로하우스 비가’를 보고 억울해 연락했다”며 “고용한 성매매 여성들이 도망가 빈털터리가 되는 바람에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으며 성매매 알선으로 고발당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철거 중인 대구 자갈마당에서는 업주들이 이곳을 관리하는 조직폭력배들에게 금품을 빼앗기고 폭행당했다며 진정을 내 수사기관이 조사 중이다. 10년 넘게 자갈마당에서 성매매 업소를 운영했다는 한 업주는 “우리에게 큰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조직폭력배에게 갈취당하고 여기저기서 돈을 뜯겨 남는 게 없다”고 주장했다.

자갈마당에서는 과거부터 끊임없이 조직폭력배를 둘러싼 사건들이 벌어져 왔다. ‘자갈마당 폭력 행사 조폭 두목 등 넷 영장’(매일신문 2001년 11월 2일 자), ‘자갈마당 기업형 성매매 달성동파 무더기 검거’(영남일보 2013년 7월 16일 자) 등의 기사로 갈등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호객을 담당하는 &#39;현관 이모&#39;가 앉는 의자에 보온, 통신 장치가 설치돼 있다. 송봉근 기자

호객을 담당하는 &#39;현관 이모&#39;가 앉는 의자에 보온, 통신 장치가 설치돼 있다. 송봉근 기자

자갈마당에서 만난 업주에 따르면 이곳에서 조직폭력배가 활동한 것은 30여 년 전부터다. 폭력 조직 두목이 지인을 동원해 성매매 업소를 여러 개 운영하면서 다른 업주들에게서 회비나 카드깡 수수료, 상납비 등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업주는 자신도 매월 회비 35만원, 카드깡 수수료 30만원, 상납금 50만원을 냈으며 십수 년 동안 20억원 상당의 재산을 빼앗긴 업주도 있다고 주장했다.

“자갈마당서 30년 전부터 조폭 활동”

조직폭력배들이 업주나 성매매 여성들에게 높게는 월 30% 이자율의 사채를 쓰게 해 큰돈을 벌었으며 1990년대 카드깡 수수료로만 하루 5000만~6000만원을 챙겼다는 게 이 업주의 말이다. 또 “업소를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가져가지만 실제로는 마음에 안 들면 가게를 부수거나 바로 앞에 차를 세워놓고 장사를 못 하게 한다”며 “돈을 못 갚은 사람에게 개목걸이를 하게 하거나 50대 업주를 자갈마당 한가운데 무릎 꿇려 손들고 있게 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예전엔 불법 성매매업을 하고 있어 신고하지 못하다가 개발사업으로 업소가 모두 문을 닫게 되자 경찰에 알렸다는 얘기였다. 이 업주는 성매매 여성들에게도 조직폭력배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지난 6월 4일 자갈마당 철거가 시작됐다. 철거가 끝나면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송봉근 기자

지난 6월 4일 자갈마당 철거가 시작됐다. 철거가 끝나면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송봉근 기자

자갈마당에서 성매매 여성, 업주, 조직폭력배는 어떤 관계였을까.

신박진영 대구여성인권센터 대표가 쓴 ‘성매매 집결지의 장소성에 대한 여성주의적 연구’에서 1980년대부터 자갈마당에 20년 동안 있었던 50대 성매매 여성은 조직폭력배에 관해 “카드깡 그것만 했지. 걔네들이 해코지하고 그런 건 없었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또 다른 여성은 "조직폭력배 행동대원들이 한 번씩 업소를 돌며 여성을 성폭력 하고 '애인'이라면서 며칠씩 괴롭히는 일이 주기적으로 있었다"고 했다. 이 외에도 업소를 그만두고 나오는 여성들을 협박하는 등 위협적 존재였다고 한다. 먹이사슬에서 성매매 여성은 가장 약자였던 셈이다.

신박 대표는 “조직폭력배와 업주는 별개의 조직이나 사람이 아니라 동일인이거나 공모자”라며 “알선업자까지 피라미드 구조로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라고 말했다. 먹고 먹히는 관계에서 비교적 아래쪽에 있는 업주들이 손해를 보상받으려 더 강압적으로 성매매를 시킨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같이 이익을 도모하다 개발 과정에서 이해가 엇갈리니 고소·고발전을 벌이는 것”이라고 했다.

한 자갈마당 업주는 “업주들이 돈 때문에 경찰에 알렸다는 얘기는 조직 두목이 낸 소문일 뿐, 실제로 피해를 본 게 맞다”고 반박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권창현 대구경찰청 광역수사대장은 “지난 6월 공갈 등 혐의로 조직폭력배 등 3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으며 보강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에 송치된 폭력 조직 두목은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업주·조폭 “피해자와 가해자” 혹은 “공모자”

자갈마당 한 업소에서 발견한 게시판. 방 번호로 추정되는 숫자들이 보인다. 송봉근 기자

자갈마당 한 업소에서 발견한 게시판. 방 번호로 추정되는 숫자들이 보인다. 송봉근 기자

성매매 집결지였다가 재개발로 철거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588’ 지역에서는 폭력 조직 신청량리파 두목이 성매매 업주들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고 재개발 사업에 개입해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두목은 1심에서 징역 10년형을 받았지만 2심에서 감형됐다.

다른 지역 사정은 어떤지 성매매 집결지와 관련된 이들에게 물었다.
강현준 전국한터연합회 대표는 “조직폭력배들이 전과가 없는 조직원을 업주로 세워놓고 뒷돈을 챙겨 조직 활동자금으로 쓰곤 한다”며“2004년 성매매 방지 특별법이 시행된 뒤로 단속이 심해져 업주들이 문을 닫자 조직폭력배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와 동네 어른 행세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부산 완월동, 서울 미아리, 경기도 평택 등지의 성매매 집결지 일부 업소가 현재도 폭력 조직과 연관이 있다.

1990년대 완월동에 있었던 옐로하우스 여성 B씨(53)는“○○파·○○○○파 등 조직폭력배들이 접대하러 오긴 했지만 직접 관리하진 않았던 것 같다”며 “다른 집결지에서도 주로 ‘삼촌’이라 불리는 동네 건달들이 해결사 노릇을 했는데 이들을 조직폭력배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집결지를 찾는 조직폭력배들이 여성들에게는 잘 대해주는 편이었다고 한다.

완월동 사정을 잘 아는 복수의 관계자는 폭력 조직이 직접 업소를 운영하진 않지만 ○○파에 소속된 일부 조직원이 여성을 공급하거나 업소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 강력계에서 일한 부산 지역 한 경찰 간부는 “1990년대까지는 완월동 주변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폭력 조직끼리 다투는 일은 있었지만 성매매 업소를 직접 운영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며 “이들은 개발 바람이 불면서 건설업이나 철거업으로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 당시 조직폭력배들이 성매매에 연관됐다 해도 업주들의 돈을 받고 업소를 보호해주며 상호 보완관계를 이뤄 불법 행위를 밝혀내기 어려웠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개발 바람 타고 유흥업에서 건설업으로 

옐로하우스에서는 업주의 지인이나 후배들이 삼촌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후 성매매 여성과 결혼해 업소를 운영하는 이도 있었다. B씨는 “과거 자갈마당에 있을 때 업주들이 기업 매출 수준의 돈을 벌어들였는데 조직폭력배들에게 착취당했다니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매매 종사자들은 미신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부적을 볼 수 있었다. 송봉근 기자

성매매 종사자들은 미신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부적을 볼 수 있었다. 송봉근 기자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폭력 조직과 성매매는 연관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5년 전국 교도소와 구치소에 폭력 조직 활동으로 수감 중이거나 전과가 있는 307명을 설문조사 한 결과(조직범죄단체의 불법적 지하경제 운영실태와 정책대안 연구) 조직이 운영한 사업에 성매매가 포함된다고 답한 비율은 33.6%, 조직의 대표 사업이라고 답한 비율은 4.6%였다.(응답자 307명)

조직의 대표 사업인 경우 연간 매출액은 10억~30억원 미만이 23.1%, 50억~100억원 미만이 15.4%였다.(응답자 13명) 전면이 유리창으로 유리방 형태의 전업 성매매 업소를 직접 관리한다고 답한 비율은 7.4%, 영업 보호 역할을 한다고 답한 비율은 5.7%였다.(응답자 230명) 폭력 조직은 유흥업소 등 겸업 성매매나 마사지방 같은 신종 성매매업에도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성매매업은 운영하기 편하면서도 수익이 높기 때문에 조직폭력배가 성매매업에 관련될 가능성이 크다. 조직폭력배와 친분이 있거나 조직폭력배를 그만둔 사람들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으며 일반인 업주가 운영하고 조직폭력배들이 투자하는 형식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지역마다 폭력 조직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이 이권에 간여하기 때문에 폭력 조직과 연계가 없다면 성매매 영업을 지속할 수 없고 금방 망한다는 응답도 있었다.

조직폭력배들은 이 조사에서 성매매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성매매는 다 돈을 잘 번다. 종류가 진짜 많은데 다 잘된다” “깡패들은 이런 것을 일적으로 하지 않는다. 유흥·대부·성매매 등 일이 생겼을 때 나선다. 해결사 같은 역할이다”라고 언급했다. 성매매 집결지에 관해서는 “○○에 사창가가 있지 않나. 40~50개 있는데 3분의 1은 우리 애들이 한다”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진상 손님 오면 나가고, 해결해주고 그렇다”고 답했다. 또 이들은 “남자가 있는 이상 성매매는 계속 잘 된다”며 아무리 단속과 수사를 지속적으로 해도 성매매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대구 경찰은 조직폭력배 사건뿐 아니라 자갈마당 업주와 전·현직 경찰의 유착 등도 조사하고 있다. 자갈마당은 조성 110여 년 만에 폐쇄됐지만 개발 과정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각종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성매매 피해자 자활 지원 조례 비판한 구의원 제명되기도

대구에서는 자갈마당 여성 자활 지원과 관련해 홍준연 중구의원이 “젊어서부터 쉽게 돈 번 분들이 2000만원 받고 자활 교육을 받은 뒤 또다시 성매매 안 한다는 확신이 없다”는 발언으로 소속 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제명돼 논란이 일었다.

대구시는 대구여성인권센터와 함께 2017년 7월부터 자갈마당 성매매 여성 110여 명 가운데 104명을 상담해 80여 명에게 8억원 이상을 지원했다. 2017년부터 올해까지 책정된 예산은 총 12억원이다.

신박진영 대구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지원 사업을 시작할 때 비밀보장과 신뢰 구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며 “자활 지원 대상자에 대한 기록은 전산상에 남지 않고 문서화해 진행기관에 보관했다가 법적으로 모든 점검·감사기간이 끝나면 적법한 과정을 거쳐 폐기한다”고 말했다.

또 신박 대표는 “행정기관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대구시가 처음부터 추가 예산을 받아서라도 원하는 여성을 모두 지원하겠다고 약속해 잘 이어져 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지원을 받은 일부 여성들은 가족에게 돌아가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고 있다. 성매매로 얻은 트라우마가 너무 심해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여성도 있다. 신박 대표는 다시 성매매를 한 사례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자활 지원 제도는 인천·전주·아산 등지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여성단체들은 업주를 피해 낮에 업소를 찾아가거나 노출된 센터 사무실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상담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여성들에게 지원 제도를 알리고 있다. 여성들 역시 업주 앞에서는 일부러 욕을 하다 나중에 몰래 상담소를 찾기도 한다. 업소에서 나온 여성들은 센터 도움으로 건물주·업주를 고발해 처벌받게 하기도 했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 1962년 생겨난 이곳에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업소 철거가 진행되는 가운데 성매매 업소 여성 등 30여명은 갈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불상사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벼랑 끝에 선 여성들이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그들만의 얘기를 꺼냈다. ‘옐로하우스 비가(悲歌·elegy)’에서 그 목소리를 들어보고 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2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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