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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⑳“짓밟힐까봐 센 척하지만 알고 보면 약한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7일 오후 옐로하우스 여성들이 1인 시위를 하는 인천 미추홀구청 입구 천막을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여성은 “아직도 우리 이야기를 언론에 연재하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기사 댓글을 보면서 우리를 이해해주는 분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사회적 낙인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왜 다른 일 않냐 묻자 “탈성매매 해봤지만 성추행 당해···”’가 보도된 이후 특히 그랬다고 했다. 여성들의 항변에도 ‘힘들게 사는 사람은 많아요. 힘들다고 다 성매매 하진 않는데’(yaki****), ‘의지가 부족한 거지 사회가 그렇게 만든 건 아닙니다’(ella****) 등 댓글의 대다수가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여성은 “힘들게 속내를 말해도 사회는 우리를 정해진 시선으로만 본다”며 “우리도 감정을 느끼는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씁쓸해했다. 이들에게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유발하는 요인은 뭘까.

일러스트=김회룡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기자 aseokim@joongang.co.kr

사회적 낙인 크게 느껴 

여성 B씨(53)는 20·30대 성매매 업소에 있을 때 집 생각을 하며 자주 울었다. 돈만 보내고 식구들을 잘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서러웠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이 낙이었지만 나이가 들어 공감대가 줄면서 자주 보지 못하자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돈을 버는 것 자체는 그에게 그다지 기쁨을 주지 못했지만 집에 돈을 보내고 어머니가 한숨 더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없이 좋았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이 취업해 처음으로 용돈을 내밀었을 때 가장 뿌듯했다. B씨는“인생을 돌아보니 슬프고 힘들었을 때는 많은데 기쁘고 행복한 기억이 별로 없다”며 “학생이었을 때가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집안 형편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을 것 같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들의 감정을 가장 많이 지배하는 것도,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것도 결국 혈육이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곤궁한 가정은 그들을 차가운 세상으로 내몰았지만 힘겨운 세월을 지나며 상처투성이가 된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도 가족이었다.

여성 D씨(36)는 하루 동안 휴대전화를 끄고 ‘잠수’를 타거나 친구와 여행을 가는 것이 요즘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 지역주택조합과 철거 문제가 불거진 뒤로 거의 쉬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서다. 벚꽃이 만발한 길이나 수목원을 산책하고 놀이동산에도 가고 싶다고 했다. 마음은 있지만 언젠가부터 무기력해져 막상 나서기가 쉽지 않다. 일이 끝난 뒤 방에서 혼자 캔맥주를 한잔하는 것이 현실의 낙이다.

인천 옐로하우스 종사자들이 인천 미추홀구청 앞에서 철거와 관련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심석용 기자

인천 옐로하우스 종사자들이 인천 미추홀구청 앞에서 철거와 관련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심석용 기자

성매매 후회할 때도 

D씨가 가장 슬펐을 때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다. D씨는 “고생하시고 속썩인 것을 떠올리면 마음이 쓰리지만 아프신 동안 옆에서 보살펴 드렸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고 말했다. 요즘도 매일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 역시 기쁜 기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했지만 소중한 사람은 있다. 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들이다. D씨는 “성매매하는 것을 아는 친구들이 있는데 ‘빨리 나와야지’라고 하면서도 사정을 이해해주고 내 선택을 믿어주는 것이 고맙다”고 말했다.

돈을 벌어 어머니 병원비를 대고 집에 보탬이 됐다는 것은 뿌듯하다. 하지만 이 일을 시작한 것이 후회될 때도 있다. 일할수록 자존감이 낮아지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하며 사람을 만나면 경계심부터 갖게 된 것이 슬프다고 했다. D씨는“이곳 여성들은 만만하게 보이면 여기저기서 짓밟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강한 척을 한다”며 “실제로는 대부분 정에 약해 이용도 많이 당한다”고 말했다.

꽃을 좋아하는 여성 D씨가 찍은 사진. 그는 친구들과 벚꽃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꽃을 좋아하는 여성 D씨가 찍은 사진. 그는 친구들과 벚꽃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자신에게 화나도 가장 소중해”

옐로하우스의 또 다른 30대 여성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때가 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됐을 때 행복해하는 자신을 발견한 뒤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요즘은 주로 JTBC '차이나는클라스', tvN '어쩌다어른' 같은 TV 교양 프로그램을 보며 호기심을 충족한다.

가끔 자신에게 화가 날 때도 있다.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낮아질 때 그렇다. 하지만 이 여성은 “마음을 바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려 한다”고 말했다. 성매매가 존엄성을 해치지 않느냐는 댓글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철거 잔재물 사이에 핀 꽃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며 “예쁘면서도 쓸쓸해 보인다”면서 옅게 웃었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 1962년 생겨난 이곳에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업소 철거가 진행되는 가운데 성매매 업소 여성 등 40여명은 갈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불상사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벼랑 끝에 선 여성들이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그들만의 얘기를 꺼냈다. ‘옐로하우스 비가(悲歌·elegy)’에서 그 목소리를 들어보고 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21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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