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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의 옐로하우스 悲歌]⑱어느 매춘 여성 쓸쓸한 죽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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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일이 생겼어요.”
지난 18일 오후 옐로하우스 여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옐로하우스에서 일하던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겼됐다는 얘기였다. 수화기 속 목소리가 떨렸다. 몇 시간 뒤 ‘인천 옐로하우스 종사자 원룸서 숨져’라는 제목의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평생 불우하게 살다 쓸쓸한 죽음 #정 많던 그녀 생각에 동료들 눈물 #빈소 없어 국화꽃 한 송이 못 받아

아파트 건설을 위한 철거가 계속되는 가운데 황망한 일을 겪은 옐로하우스는 술렁였다.

숨진 여성 F씨(43)가 발견된 것은 지난 15일 오후 6시쯤이다. 지난 달 초까지 옐로하우스 업소 ○호에 살던 F씨는 건물 철거가 임박하자 거처를 옮겨야 했다. 근처에 보증금 500만원, 월세 40만원의 원룸을 얻었다. ○호의 다른 여성들도 모두 업소에서 나왔다. 건물은 곧 철거됐다.

F씨를 발견한 사람은 옐로하우스에서 10년 넘게 운전 일을 해 온 택시기사다. 이 기사는 가게에서 나온 F씨에게 돈을 받고 식사 등을 챙겨주고 있었다. 그는 “저녁에 갈비탕이라도 먹일까 해 전화했는데 계속 받지 않아 집안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평소 업소와 집을 오가며 일을 도와준 터라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문을 열자 F씨가 키우던 강아지 두 마리가 뛰어나왔다. F씨는 입에 출혈 흔적을 보인 채 침대 옆에 쓰러져 있었다. 기사는 “이미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며 “상태를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 여성인 ○호 업주를 불렀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후 6시 24분 미추홀소방서에 신고했다. 구급대원이 출동했을 때 F씨는 호흡과 맥박이 없었으며 사후강직이 나타났다. 현장을 찾은 경찰이 시신을 움직이자 목에 고인 핏덩이가 쏟아져 나왔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밝은 모습으로 왔다가 술에 찌들어 

김경한 인천 미추홀경찰서 형사과장은 “사망 당시 유가족이 확인되지 않아 사인을 확실히 밝히려고 부검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이 이뤄졌다. 관계자에 따르면 1차 구두 소견으로 밝혀진 사인은 식도정맥류 파열이었다. 피를 토한 것 외에 다른 외상은 없었다.

생전의 F씨를 마지막으로 봤다는 택시기사는 “13일에 F씨와 만났고 14일 새벽 전화가 왔는데 자느라 못 받았다”고 말했다.

다수의 옐로하우스 종사자들은 F씨가 오래 전부터 간경화를 앓고 있었다고 말했다. 말기였다. 권광안 가천대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술로 간경화가 오면 굳어버린 간이 기능을 하지 못해 혈액이 간이 아닌 식도 쪽으로 들어가면서 정맥류가 생길 수 있다”며 “이때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고 계속 알코올을 섭취하면 식도정맥류가 파열돼 출혈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옐로하우스의 한 여성은 “F씨가 18일에 병원을 가려 했다는데 15일에 숨졌다”고 안타까워했다.

F씨는 5~6년 전 옐로하우스에 왔다. F씨에 대해 잘 안다는 한 지인은 F씨가 전형적으로 불우하게 성장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F씨를) 옐로하우스에 넘긴 것”이라며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동네 할머니 손에 자라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그 집에서 연을 끊자고 해 일가친척이 없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들에 따르면 F씨가 처음 옐로하우스에 왔을 때는 환했다고 한다. 30대 동료 여성의 말이다. “처음에는 표정도 밝고 건강도 괜찮았어요. 근데 여기 오고 몇 달 뒤인가 술을 많이 먹기 시작하더라고요.”

음주가 잦아진 F씨는 몇 번 쓰러졌다. 의사가 알코올이 원인이라며 금주를 권했지만 며칠 입원하고 나온 뒤 다시 술을 찾았다. 옐로하우스 여성들은 F씨가 술에 의존하게 된 과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옐로하우스의 건물이 한 채씩 헐릴 때마다 이곳에 남은 여성들의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지역주택조합은 4월 말까지 철거를 마칠 계획이다. 최은경 기자

옐로하우스의 건물이 한 채씩 헐릴 때마다 이곳에 남은 여성들의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지역주택조합은 4월 말까지 철거를 마칠 계획이다. 최은경 기자

한 40대 여성의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 기피하는 남성을 많이 상대하잖아요. 일이 너무 힘드니까 술을 찾는 거예요. 그래야 버틸 수 있다면서요. 결국 이곳에 와 몸이 망가지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셈입니다.”

몇 차례 요양병원 등에 입원해야 했지만 퇴원하면 다시 일을 계속했다. 지난해에는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피를 많이 흘린 적도 있다. 한 여성은 “쉬었어야 했는데도 계속 일을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업주는 “지난해 8월부터는 쉬면서 간간이 일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늘 쓸쓸한 그에게 강아지가 유일한 가족 

평생 가족의 사랑을 못 받아봤기 때문인지 F씨는 외로움을 많이 탔다고 했다. 돈이 없으면 사람들이 상대해주지 않는다며 돈을 악착같이 모았다고 했다. 처음 왔을 땐 가끔 동료와 어울려 바깥 나들이를 했지만 언젠가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업소나 방 안에서 보냈다.

여성들은 F씨가 정이 많았다고 말한다. 함께 일한 여성의 말이다. “주변 사람을 잘 챙겼어요. 제가 아플 때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고 있는데 언니가 선뜻 돈을 빌려줬어요. 나중에 갚으려니까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안 받더군요. 그렇게 힘들게 돈을 벌고 모아서 결국 쓰지도 못했네요. 남겨줄 가족도 없고.”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여성에게만 남자 손님들이 몰리면서 다른 동료들이 돈을 벌지 못했다. 그러자 F씨는 다른 여성들 몫으로 돌아갈 수 있게 슬그머니 자신의 돈으로 '화대'를 냈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이곳 여성들 사이에서 따뜻한 선행으로 전해진다. 친하게 지내던 동생에게는 “너 시집 꼭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 내가 냉장고를 사줄 게”라고 약속했다.

가족이 없고 바깥 친구도 만나지 않던 F씨는 옐로하우스에 올 때부터 함께였던 강아지 두 마리를 끔찍하게 아꼈다. 그의 유일한 가족인 셈이었다. 그가 가장 사랑하고 정을 많이 쏟은 상대가 강아지들이라는 건 동료들의 공통된 얘기였다.

술을 자주 마시긴 했지만 F씨는 돈을 모으는 데 열심이었다고 했다. 은행 몇 곳에 통장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F씨의 죽음 소식이 전해진 이후 동료들 사이에서는 F씨가 들었다는 거액의 보험이 화제가 되고 있다. 몇년 전 많은 돈을 납부하는 보험에 가입했는데 F씨에게 직접 보험 얘기를 들은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자꾸 아프니까 보험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했어요. 소개 받은 보험설계사에게 상당히 큰 액수의 보험을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본인이 죽으면 보험금을 업주가 받게 된다고 했어요.”

“가족도 없는데 거액 보험 왜?” 

이를 두고 여러 동료들은 “집창촌 여성들은 노후보다는 당장 버는 것이 급하기 때문에 그렇게 고액의 보험을 드는 경우가 흔치 않다”며 “많이 아픈 데다 가족도 없는 사람이 왜 매달 큰 돈을 내는 보험을 들었으며, 업주를 수익자로 한 점도 의외”라고 말했다.

F씨의 보험 수익자가 누구인지 등을 경찰에 물었다. 이에 대해 경찰은 “보험회사에 문의한 결과 수익자에 '기타'라고 표기돼 있고 이는 법정상속인을 뜻한다고 했다”고 설명할 뿐 그 이상의 내용을 말해주지 않았다. 해당 보험사에도 물었으나 “수익자에 기타라고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진 않다”며 “기타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개별 사안에 따라 다르다”고만 얘기했다.

보험에 대해 업주에게도 물었다. 업주는 “보험 수령자는 내가 맞다”며 “아픈 F씨를 몇년 동안 병원에 데리고 다니고 수발하면서 보호자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숨진 F씨를 처음 발견한 택시기사는 “처음에 업주가 주변에서 손가락질 당한다며 자신을 수익자로 지정하는 것을 반대했는데 F씨가 원했다”며 “대신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장례를 치러주고 강아지를 키워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지낸 공간이 한순간 무너졌다. 최은경 기자

여성들이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지낸 공간이 한순간 무너졌다. 최은경 기자

F씨의 소원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와 가끔 대화했던 여성들은 “F씨가 입버릇처럼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옐로하우스가 없어지면 어떻게 사느냐’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한 30대 여성은 “오뎅 넣은 잡채와 동태찌개를 좋아했는데 고생만 하다 가버렸다”며 “아직 여기를 못 떠나고 있을 것 같다”고 울먹였다. 이 여성이 2월 초 F씨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얼굴이 붓고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고 했다.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에도 혼자일 뿐 

옐로하우스 여성들은 “몸이 아픈 F씨가 옐로하우스에 남아 있었다면 쓰러진 걸 다른 사람이 봤을 거고 응급실에 빨리 갔다면 살 수 있었을 텐데 혼자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면서 현실을 원망했다. 업주는 “가게에서 나간 뒤에도 F씨를 자주 들여다봤다”며 “그렇다고 24시간 지켜볼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옐로하우스에서 사람이 죽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여성 C씨(37)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너무 힘들다”며 “대부분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든 것을 버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여성들”이라고 말했다. C씨는 “나 역시 같은 선택을 하려다가 엄마를 생각해 멈췄는데 가족이 없는 F씨는 의지할 곳이 없어 술에만 의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생 외롭게 그늘에서 살아야 했던 F씨는 이승을 떠나는 순간까지 혼자다. 미추홀구청은 지난 22일 F씨의 법적 연고자를 확인했다. 이 연고자가 시신을 양도받지 않으면 무연고 사망자 처리 지침에 따라 F씨의 시신은 4월 초쯤 화장된다. 그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강아지들은 업주가 데려갔다. 업주는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내가 장례를 치러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F씨의 시신은 인천의 한 장례식장에 안치돼 있다. 숨진 지 보름이 넘었지만 친한 동료들에게 국화 한 송이 받지 못했다. 빈소가 차려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B씨는 “옐로하우스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세상 사람들이 불쌍하게 여기기는커녕 관심이나 가질지 모르겠다”며 “아무도 모르게 외롭게 살다 쓸쓸하게 죽어간 F씨를 보니 남 일 같지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 1962년 생겨난 이곳에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업소 철거가 진행되는 가운데 성매매 업소 여성 등 40여명은 갈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불상사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벼랑 끝에 선 여성들이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그들만의 얘기를 꺼냈다. ‘옐로하우스 비가(悲歌·elegy)’에서 그 목소리를 들어보고 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ins.com

<19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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