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설득 '무모한 도전' 북 궤변에 여론만 더 악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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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장관급회담이 북한의 대포동 2호 발사로 촉발된 격랑을 끝내 넘지 못하고 결렬됐다. 장관급회담 사상 처음으로 북측 대표단이 일정을 채우지 못한 채 돌아갔다. 다음 회담 날짜조차 잡지 못했다. 남북한은 향후 후유증을 극복하는 데 상당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또 미사일 발사 이후 대북 압박을 위한 국제 공조는 힘을 받게 된 반면 노무현 정부의 유화적 대북 접근법은 비판에 직면했다.

제19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리고 있는 부산 해운대 웨스틴조선호텔 입구에서 연일 반북시위가 이어졌다. 13일에도 HID청년동지회 회원10여 명이 미사일 모형을 실은 차량을 동원해 시위를 벌이자 북한 기자들이 호텔 방에서 촬영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쌀 지원 난색에 판 깨기 돌입=북한 권호웅 단장은 13일에도 쌀 50만t(1750억원 상당) 확보에만 매달렸다. 오전 10시30분 열린 수석대표 단독접촉에서다. 그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미사일 상황 타개까지 지원을 유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추가 논의는 부적절하다"며 사실상 결렬을 통보했다. 그러고는 곧장 직통전화로 평양에 고려항공 전세기를 보내 달라고 알렸다.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미사일 문제와 6자회담 복귀 논의를 철저히 차단했다. 대표단 성명에서 "북남 상급회담은 결코 군사회담이 아니며 6자회담은 더욱 아니다"고 밝힌 데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북한은 결국 쌀 지원과 신발.비누 같은 경공업 원료(750억원)를 얻는 데만 치중한다는 전략으로 회담에 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선군(先軍)정치 때문에 남한이 덕을 본다'는 단장의 망언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더 이상 얻을 게 없다는 생각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결국 만 하루 동안의 탐색전과 선전전으로 끝낸 것이다.

◆물거품 된 대북 설득=회담 대변인인 이관세 통일부 정책홍보실장은 브리핑에서 "정부의 미사일 설득 노력이 북한 지도부에도 전달된 것으로 안다"며 "북한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북 설득 채널 가동과 미사일 문제, 6자회담 복귀 같은 목표에 미달됐다. 북한은 그나마 열려 있던 남북대화 채널까지 닫아버릴 태세다. 정부는 돌아서는 북한의 손을 잡지 않았다. 회담 관계자는 "북한 대표단에 대한 국민 여론이 극도로 악화한 상황과 함께 정부가 안을 부담도 감안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에 따라 터무니없는 북한의 망언으로 국민 자존심에 상처를 준 회담이 과연 적절했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남측의 미사일 집중 논의와 북한의 쌀 지원 확보는 접점이 불가능한 의제였다는 얘기다. 미사일 발사사태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노무현 대통령과 회담을 밀어붙인 이종석 장관이 코너에 몰리게 됐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대북정책 기조는 유지하되 남북회담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회담을 여는 것만이 남북관계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것이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결렬이 예견된 회담은 서로에 상처만 줄뿐이란 지적이다.

◆종결회의 발언록=다음은 종결회의에서 양측 수석대표가 나눈 모두(冒頭)발언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이 대표=2박3일동안 편하게 지냈나.

▶권 단장=숙소 조건은 좋았는데 문제는 사람 마음이다.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을 대할 때 마음이 아팠다.

▶이 장관=종결회의를 원래 5시에 하기로 했는데 북에서 일찍하고 오늘 중 귀환하겠다고 전해왔다. 저희도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시점에서 종결하는데 낫다고 판단해 종결한 것이다. 아쉬움도 있지만 서로 충분히 의사 전달한 상태라 종결도 좋다고 생각한다.

▶권 단장=상급회담이 3박4일이나 그 이상 해왔는데 하루 당겨 끝나 결실없는 것처럼 보여 유감스럽다. 회담을 2박3일로 앞당기듯 북과 남도 화합하고 단결해 서로 당길 것은 당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부산=이영종 기자<yjlee@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남북관계

7월 5일 북한 대포동 2호 등 7발의 미사일 발사. 정부 "북 도발적 행위 중단 촉구" 성명 발표. 반기문 장관 "대북 인도적 지원 재검토"

7일 국방부, 북한이 3일 제의했던 남북 장성급회담 실무접촉 거부. 통일부, 남북 장관급회담 예정대로 개최 방침 발표

9일 이종석 장관 "장관급회담에서 북 미사일 항의하겠다"

12일 남북 장관급회담 북한 대표단 부산 도착

13일 권호웅 북 단장 "선군 덕에 남한 안전"

14일 남북 장관급회담 결렬. 북 대표단 조기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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