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내전으로 접어든 바른미래당의 갈등 배경엔 ‘검은 세력’의 존재를 둘러싼 공방도 자리 잡고 있다.
22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벌어진 물리적 충돌은 손학규 대표 측이 5명의 혁신위원과 비당권파가 요구한 혁신위 안건의 상정을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혁신위가 11일 공개한 혁신안은 손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거취를 향후 여론조사로 결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손 대표 측에선 혁신위가 이런 결정을 하도록 ‘검은 세력’이 조종했으며 그 배후에는 유승민 의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검은 세력’이란 표현이 처음 등장한 건 손 대표가 영입한 주대환 바른미래당 혁신위원장이 11일 사퇴하며 “젊은 혁신위원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당을 깨려는 검은 세력에 크게 분노를 느낀다”고 주장하면서다.
21일 당권파인 임재훈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위가 가동 중이던 7일 서울 서초구의 한 식당에서 유승민 의원과 바른미래당 의원 2명이 혁신위원 한 분과 만났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유 의원은 혁신위원에게 손학규 대표 퇴진을 혁신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유 의원이 검은 세력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비당권파의 공세에 한동안 ‘모르쇠’로 일관했던 손학규 대표도 22일 반격을 시도했다. 손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유 의원 등의 접촉은) 중대한 당헌·당규 위반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실 여부를 공식적 절차를 통해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이혜훈 의원이 조용술 전 혁신위원을 만나 ‘손 대표에게 나가라고 말해 달라’고 했다는데, 당 대표급이 혁신위에 개입하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유승민 의원은 사실을 부인했기 때문에 진상조사 필요성에 공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이날 오전 조용술 전 혁신위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7월 9일 오후 4시께 국회 정보위원장실에서 이혜훈 의원을 1시간가량 만났는데 내게 ‘손 대표가 퇴진해야 한다고 말해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당권파에선 이를 ‘음모론’으로 규정하며 반발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은 의혹이 제기된 21일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7일 저녁에 주대환 혁신위원장 및 국회의원 두 분을 만난 자리에서 바른미래당의 혁신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며 “하지만 주대환 위원장에게 당 대표의 퇴진을 혁신위의 안건으로 요구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이혜훈 의원 측도 “당시 주대환 위원장의 주선으로 조용술 혁신위원을 5일 만났으며 당시엔 이미 손 대표의 퇴진 안건이 채택된 시기”라고 반박했다.
김지나·구혁모·권성주·이기인·장지훈 혁신위원도 12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주 전 위원장이 사퇴할 때 말한 검은 세력과 (그들이) 젊은 정치인을 조종한다는 발언에 굉장히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16일 ‘검은 세력들’이란 타이틀로 페이스북 방송을 진행했다. 자신들을 조종하는 검은 세력이 있다는 손 대표 측의 의심을 비틀어 풍자한 셈이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