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대한민국 중소기업, 크기 어렵다는데 …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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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970년대 이후 창업한 기업 가운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우연이라기보다는 우리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합니다."

변 사장은 평소 생각했던 한국 산업구조의 문제점을 하나씩 꺼냈다. 그는 "건강한 생태계는 항상 순환해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대기업 위주의 한국 산업구조는 건강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척박하다"고 했다. 수십 년 전에 창업한 대기업들이 독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끼어들 내수시장이 작고, 해외로 나가더라도 사람과 자본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기업으로 사람과 자본이 몰리는 사회구조 또한 중소기업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 키우는 데 따른 대가보다 위험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번 망하면 사촌까지 집이 넘어가는 반면 성장에 대한 대가는 크지 않기 때문에 70년대 이후 엘리트들이 창업을 선택하지 않았다"며 "위험보다는 대가가 큰 법조계로 인재들이 몰린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공학한림원 회장인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전날 밤 늦게 해외출장에서 돌아온 그였지만 이른 아침 행사에 참석했다. 윤 부회장은 "변 사장의 발표가 대부분 사실이라고 생각된다"며 발언을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각장애인이 코끼리를 만지듯이 일부만 얘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윤 부회장은 "삼성이나 현대나 모두 구멍가게에서 출발했다"며 "50~60년대 또한 시장이 크지 않았고 자금이나 인력, 기술 모두 미천했지만 그래도 재벌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헝그리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뭔가를 이뤄내려는 열정과 집념,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해서만 이해돼야 한다"며 "대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면 망하기 때문에 협력업체에 가격을 낮추라고 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같은 배를 탔다는 심정으로 모두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KT 사장에서 물러난 뒤 미국 노스웨스턴대 캘로그스쿨에서 6개월간 강의를 했던 이용경 전 KT 사장도 말문을 열었다. 이 전 사장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커가는 데 어려움이 많지만 거꾸로 얘기하면 그만큼 기회도 많다는 얘기"라며 "역경에 부닥칠수록 강한 인성으로 극복해야 하는데 편법을 선택했다가 기업을 그르치는 기업가를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허진규 일진 회장도 한마디 했다. 허 회장은 "50~60년대에 비해 오늘날의 기업은 선진국과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경영환경이 더 어렵다"며 "신용평가 면에서도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비해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어 훨씬 유리한 편"이라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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