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추억 모두 잃어”…부모들 울리는 ‘성장앨범 먹튀’ 사기

중앙일보

입력

지난 8일 경기 양주경찰서에 젊은 부부들의 고소장이 접수됐다. 양주시 한 아기 사진 전문 스튜디오 사장이 사진 촬영비를 받은 뒤 잠적했다는 내용이었다. 12일 오후 5시까지 접수된 피해자는 100여명, 피해 금액은 총 1억원 이상이었다. 피해자만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회원 수가 700명을 넘어 경찰은 신고 건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자들은 주로 이 지역에 사는 젊은 부부로 해당 스튜디오와 아기 돌 사진이나 성장앨범을 계약해 각자 80만~200만원을 지급했다. 성장앨범은 태아 때부터 돌 등까지 아기가 성장하는 모습을 몇 차례 촬영해 앨범으로 만드는 상품이다. 지난해 5월 이후 계약한 피해자가 대다수였으며 일부는 나중에 찍기로 한 사진비까지 선납했다. 계약만 하고 촬영을 한 번도 하지 못한 피해자도 있었다.

[사진 pixabay]

빚 청산, 생활비로 촬영비 모두 써

이 스튜디오 사장 A씨(53)는 고소장 접수 이틀 뒤인 10일 충남 서산에서 검거됐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최근 빚을 많이 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나중에 경찰에 나와 조사를 받으려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사진비로 받은 돈은 빚 청산, 생활비 등으로 모두 썼으며 현재로써는 변제 능력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사진 관련 일을 하다 3년 전쯤 양주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서산에는 가족을 만나러 간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결국 13일 구속됐다.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해당 사건과 관련한 글들이 올라왔다. 직접 피해를 봤다는 한 누리꾼은 “아들 돌 사진 촬영 날 사건이 터졌다”며 “곧 돌이라 다른 스튜디오를 급하게 알아봐야 했다”고 호소했다. 누리꾼들은 “아이들 추억 사진으로 장난치는 사기꾼들은 큰 처벌을 받아야 한다” “성장앨범 분납 결제하는 곳을 이용해야겠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상처와 불안한 마음에 성장앨범을 하고 싶지 않다”거나“과거 다른 스튜디오에서 비슷한 피해를 당해 고소했지만 아무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누리꾼도 있었다.

“할인 미끼로 선결제 유도”

과거 비슷한 피해를 당했다는 글이 여러 눈에 띄었다. 실제 전국에서 비슷한 수법의 아기 성장앨범 사기가 발생하고 있다.

피해 금액이 무려 56억원에 달하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 2014년 경기도 일산에서 발생한 B스튜디오 사건이다. 이 스튜디오 대표는 아기 성장앨범을 제작해주겠다며 돈을 받은 뒤 계약을 지키지 않고 잠적해 한달여 만에 검거됐다. 당시 이 대표를 고소한 피해자가 2200여 명, 고소장에 접수된 피해액은 56억여원이었다. 지난해 6월에는 서울 강남과 경기도 고양에 있는 유명 아기 성장앨범 스튜디오 대표가 300여 명에게 사기 혐의로 고소당했다. 피해 금액은 2억8000만원을 넘었다.

양주서 관계자는 “할인 등 이벤트를 내걸어 선결제를 유도하는 데다 성장앨범 제작 기간이 길어 업체를 정리하고 도주하기 용이하다”고 비슷한 범죄가 반복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가해자가 경제적 능력이 있다면 합의나 민사소송 등으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피해구제 신청 113건

사업자가 잠적하는 것 외에도 중도 해지시 과도한 위약금 청구, 계약해지 거부, 낮은 사진 품질 등 사진촬영 관련 피해가 느는 추세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사진촬영 관련 피해구제 신청 건수는 2014년 93건, 2015년 74건, 2016년 93건으로 100건을 밑돌다 2017년 이후 매해 100건 이상 접수됐다(2017년 117건, 2018년 113건). 올해는 상반기 신청 건수만 72건이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선결제시 신용카드 할부를 이용하면 업체가 문을 닫더라도 카드사에 항변권을 행사해 남은 할부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며 “촬영 단계별로 대금을 나눠 결제하는 것 역시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계약 전 이용 후기와 다른 이용자의 조언을 참고하면 업체의 건전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