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변화하고 있는가|재미교수 대담|"「변화」찾지만 김일성이 걸림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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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한은 중·소·동구권등 대다수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혁에 나서고 있는 대세 속에서도 좀처럼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끝난 한미 북한학술대회에 참석했던 서대숙 (미하와이대) 고병철 (미일리노이대)교수의 대담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조명한다.
▲서대숙=지금 중· 소등 세계의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체제개혁등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북한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고병철=그런 변화는 없습니다. 소련과 같이 사실상 자유선거가 실시되고 당정책이나 체제, 지도자에 걸쳐 광범한 비판이 가능한 것에 비하면 북한은 적어도 1백년은 뒤져있다고 하겠습니다.
▲서=북한에 정치적 변화가 오지않고 있다는 한 예로 지난 제6기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들수 있습니다.
당시 대의원후보명단은 있었지만 주요지도자를 제외한 일반 대의원 당선자명단은 발표조차 하지 않았죠.

<중국·소련과 달라>
▲고=경제면에서 보자면 역시 중·소와 대조적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이미 해체되고있는 집단농장이 북한에서는 오히려 한단계 높여 국가농장으로 만들자는 논의가 있죠. 또 중앙통제 경제나 대중동원방식에 의한 경제건설 추진 등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84년이래 합영법을 채택한 것과 무역·관광분야에서 일부나마 변화가 있었죠.
▲서=북한의 김일성·김정일이 여러차례 중국을 방문, 개혁작업을 보고온 만큼 모색은 하고 있습니다.
지난 85년 제2차 7개년계획이 완료된 다음 변화를 시사하는 전례없는 차이점이 나타났습니다.
86년을 공백으로, 87년은 1년 조정기로 지낸뒤 제3차 7개년 계획발표에 관례를 깨고 당대회를 소집하지 않았던 거죠. 북한은 72년 신헌법발효이후 경제계획이 끝나면 바로 당대회와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다음 계획을 발표해왔읍니다.
▲고=북한지도층이 과거『식의주문제는 완전해결했다』『우리는 세상에 부러움이 없다』는 등의 선전을 해왔는데 제3차 7개년 계획에서 김일성은 오히려 식의주문제의 원만한 해결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죠. 그만큼 실용주의적인 변모라고 하겠읍니다.
▲서=장기집권을 해오고 있는 김일성의 경제문제에 대한 인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과거 만주의 항일 빨치산시절 발상으로 먹고 자고 입는 문제가 해결되면 경제발전으로 간주하는 것이죠.
그러나 김정일세대의 등장으로 경제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식의주는 물론 그 이상으로 TV·냉장고·컴퓨터 등 일반 자본주의 국가에서 소유하는 모든 것을 자신들도 가져야겠다는 데로 경제개념이 확대된 것이죠.
김일성은 이런 것은 사치로 여깁니다.

<기존방식 재평가>
▲고=인간이 명령으로만 움직이지는 않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의 명령식 경제체제가 성공한 사례는 전혀 없습니다.
북한의 경제엘리트들도 이점을 모를리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명령식 계획경제에 시장기능같은 것을 도입하게 되면 그 대가로 정치적 모험이나 사상오염같은 것이 생깁니다. 중국의 천안문사태가 그걸 입증하고 있죠. 북한은 여기에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최근 북한의 분위기를 보면 조금 고생은 되지만 『역시「우리식」 이 좋다』 고 하는 종래의 방식에 대한 재평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정치적으로 권력승계와 관련하여 변화가 있고 경제적으로는 당지령식 경제에서 전문기술관료에 의한 추진등으로 변화가 있다는 데는 공감이 갑니다.
북한의 군사적 목표는 한국이며 이같은 군사면에서는 전혀 변화가 없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저는 조금 이견이 있습니다. 물론 북한의 대남전략은 남한의 공산화가 그 목표겠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무력에 의한 공산화가 어렵다는 인식변화에 따라 정책재조정이 있었다고 봅니다.
북한은 80년10월 제6차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고려연방제를 제안함으로써 선전적 성격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전략적 변화를 보였고 83년에는 3자회담을 내놓았습니디.
이는 묵시적으로 당시, 제5공화국의 전두환정권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죠. 북한은 물론 남한내부의 힘에 의한 체제전복과 같은 기대를 포기한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무력통일전략에서 연방제에 의한 통일접근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서=그러니까 군사력에의한 통일전략이 정치적 접근방식으로 바뀌었다는 지적입니까.
▲고=물론 여기에는 많은반론이 예상됩니다. 북한이 경제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군사비를 지출한다든지, 군대를 공격형인 전방배치 해놓았고 탱크·장갑차의 비중이 압도적이라는 점 등이 제기될 수 있죠.북 한이 통일전선전략과 연방제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에도 안보문제란게 있다는 것입니다.

<빨치산기질 여전>
막강한 한국군과 미군, 핵무기, 팀스피리트 훈련, 그리고 이들 군사력의 전방배치는 북한에 불안감을 안준다고 할수는 없죠. 북한도 남한의 북침가능성에 대비하지않을 수 없는 입장일 것입니다.
▲서=군사문제는 여러 측면에서 관련시켜 볼수 있겠습니다.
제가 처음 군사문제를 말한것은 북한의 군사정책이나 전략전술에 어떤 변화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와 달리 지금은 남한도 북한도 전쟁을 하면 승산이 없다는 점에서 한국전쟁이 되풀이되는 형태의 무력전은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빨치산출신으로 김일성에게 배어있는 군사적 기질만큼은 주시해야 될것입니다. 이것은 옳다, 그르다의 판정과는 상관없는 저의 견해이기도 합니다. 빨치산은 언제나 공격을 가할수있는 반면 방어에는 신경을 쓰지않습니다.
집시와 같은거죠. 공격하고서는 도망치는 겁니다.
지금도 그와 같은 김일성의 전쟁관은 북한에 뿌리를 깊이 내려있다고 봅니다. 무엇을 고수해야겠다, 어디까지는 방어하겠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12개를 팠다는 땅굴도 김일성의 이같은 전쟁관과 관련된 것이죠.
격국 이같은 사고방식에는 아직 변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서교수 말씀에는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이와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현재 북한 인민군의 3대 고위직으로 사령관 김일성, 인민무력부장 오진우, 총참모장 최광이 모두 빨치산 출신이지 않습니까. 이점은 어떻게 보십니까.
▲서=그에 관한 판단은 각자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이제 북한에 살아 있는 빨치산 출신은 몇명 안되죠.최광은 오극렬과 교체하여 재등장했는데 젊은 세대인 오극렬은 빨치산인 오중치의 아들이죠.
오극렬도 빨치산과 마찬가지입니다. 오·최 교체이유는 확실히 모르지만 적어도 북한의 군사가 빨치산의 손에 그냥있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저는 북한의 변화를 말할때는 늘 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준은퇴한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넘겨준 것은 일상적인 내정, 경제운영같은 것이고 군사통수· 외교정책· 대남정책의3개 부문만큼은 고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이들 3개 부문은 김일성이 직접 관장하거나 아니면 가까이 일하는 빨치산 출신에게 맡기거나 합니다.

<군사는 직접지휘>
북한 정권 40여년의 역사에 있어 인사변화가 가장 적었던 부서도 바로 이 3곳입니다. 외교부장의 경우를 들면 박헌영을 비롯, 남일·박성철·허담, 지금의 김영남, 이렇게 40여년 동안 5명뿐이지 않습니까. 대남정책도 마찬가지죠.
초기 박헌영·이승엽등 남로당계열을 거친 이후 이효순·허봉학·김중린·허담이 모두죠. 이같이 이들 부문은 김일성의 주도아래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제일 먼저 김정일에게 넘겨준 것이 당아닙니까. 그다음이 정부인사관계인데 총리나 중앙인민위원회가 바뀌는걸 보면 김정일이 하는것 같아요. 자꾸 바뀌지않습니까.
▲고=그렇죠. 경제부처 책임자와 그 조직까지도 빈번히 바뀌고 있죠.
▲서=결국 북한의 변화라면 김정일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부 찾을수 있는 반면 군사·대남· 외교등에서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군사부문에있어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넘겨주지 않는 것은 지금도 중국의 덩샤오핑(등소평) 이 군사위 주석직을 고수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중요시되고있는 북한의 대남정책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북한의 대남전략에 양면성이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한편으로 정부레벨대화를 제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민간레벨의 개인및 사회단체들과의 접촉을 추구하는 점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북한이 이같은 자세를 보이는 이유는 정통성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북한은 남한의 제5,제6공화국을 부인하고 대화자체가 정통성을 부추켜주는 역할을 하므로 남한의 민주인사를 배반하게 된다는 주장까지 합니다. 통일문제는 민중적인 것인만큼 정부차원이 아닌 여러 사람들이 접촉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북한의 대남정책이 독자적으로 결정된다기보다 남한의 대응이 큰 변수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남쪽이 보다 유연성을 보여 대화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이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북한의 접촉이 원활해지면 결국 북한의 대남전략전술도 변화되어가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대북정책도 문제>
▲서=북한의 양면전술을 익히 알고있는 남한측이 영향력을 행사하여 대화분위기를 이끌어가고, 나아가 북한의 대남전략에도 영향을 줄수있다는 말씀은 상당히 고차원적인 것입니다.
한국을 과소평가해서가 아니라 한국정부자체가 「민족적 동질성」 에 근거하여 북한과 어떻게든 대화를 하려고 하는데 이는 북한의 진의나 진상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또 종교계의 목사나 신부들, 그리고 재야인사·전대협등 학생,이 모든 사람들이 북한이라는 나라가 무엇인지, 그 의도가 무엇인지 똑바로 파악하지도 않고 북한과의 관계를 맺고자 하는데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점을 강력히 지적해두고 싶습니다.
▲고=저와 같이 한국사정에 밝을수 없는 입장에서 몇가지 원칙론적인 의문이 있습니다.
북한의 대남정책을 말하지만 그럼 남한의 대북정책은 어떠냐는 것이죠.「7·7선언」이 전술인지, 정책적 변화인지는 잘모르지만 북한에서 결코 획기적인 정책변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최근 문목사등의 입북사태로 남북한 관계에 나쁜 영향을 준것은 유감으로 생각됩니다.

<당하지는 말아야>
▲서=문목사이후 일련외 입북사태를 보면 남한정부에 편을 들어서가 아니라 강경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도 없었겠죠. 적어도 북한의 전술에 당하는 차원은 벗어나야하겠죠.
그리고 북한의 7·4공동성명의 3대원칙에 대한 풀이는 남한과 다르지 않습니까. 김일성은 당시 자주란 미군철수이며, 평화통일이란 한국군의 현대화 방지, 그리고 민족대단결은 반공법 철폐 및 남한의 반체제운동 확대로 해석했거든요. 북한은 이제까지 남한을 어떻게 고쳐서 통일하겠다고만 했지 자체로는 어떤 양보도, 변화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정의롭고 너희가 잘못이니까 고쳐서 와라는 식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고=81년 여름 북한을 방문했을때 한 북한학자가 한반도통일은 남한이 민주화되어야 가능하다고 그래요.
그래서 북한은 민주화되었느냐고 했더니 자신있게 그렇다고 해요.그러면 김일성주석도 비판할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얼굴을 붉히면서 『비판대상이 아닌 흠모의 대상』이라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어렵고, 또 변화를 기대하는데도 무리가 있지만 그럴수록 남쪽에서 「세찬바람」 보다 「따뜻한 햇볕」 으로 대할 것이 요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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