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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 스님 “기도형 종교, 더이상 안 먹히는 시대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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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도심에서 현대인을 대상으로 명상을 지도하는 인경 스님은 ’예전에는 ‘휴식형 명상’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템플스테이나 산사의 휴식처럼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다. 명상을 통해 자신의 현실적인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우상조 기자]

도심에서 현대인을 대상으로 명상을 지도하는 인경 스님은 ’예전에는 ‘휴식형 명상’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템플스테이나 산사의 휴식처럼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다. 명상을 통해 자신의 현실적인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우상조 기자]

서울 성북구 삼선교에는 도심 속의 선방인 ‘목우(牧牛) 선원’이 있다. 주택가 5층 건물을 모두 선원에서 사용한다. 목우 선원에는 불교 사찰에서 중시하는 기도도 없고, 제사도 없다. 대신 그 자리에 ‘명상’을 집어넣었다. 목우 선원장 인경(63) 스님은 명상과 심리상담 전문가다. 젊은 시절 초등학교에서 5년간 교편을 잡다가 출가한 그는 “미래 사회에는 불교의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고 내다봤다. 지난달 20일 목우 선원에서 만난 그에게 동서양 종교계에 일고 있는 지각변동과 종교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물었다.

전통적 종교 영역 갈수록 축소 #현대인은 현실문제 해결 원해 #종교가 여기에 답할 수 있어야 #기도와 제사 대신 명상으로 실험

현대인은 갈수록 종교에 관심이 없다. 이유가 뭔가.
“전통적인 종교의 영역이 축소되고 있다. 가령 옛날에는 장례 의식이 종교의 영역이었다. 출생과 결혼, 그리고 죽음. 그런 인간 삶의 통과의례가 모두 종교 영역이었다. 요즘은 다르다. 사람들은 이제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사찰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새로운 방향이라면.
“지금껏 사찰 운영은 현실적으로 기도와 제사에 많이 의지해 왔다. 이제 그런 ‘기도형 종교’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도형 종교’는 왜 통했나.
“기도는 부처님이나 하느님에게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소망하는 것이다. 1970년대의 경제 성장, 80년대와 90년대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거치면서 소망하는 바들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이제는 경제 성장도 둔화하고, 기도도 시들해지고 있다. 예전처럼 기도를 해도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다. 그러니 ‘기도형 종교’가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진다.”

인경 스님은 “옛날에는 대가족 사회였다가 핵가족 사회가 됐다. 이제는 핵가족 시대도 무너지고 있다”고 짚었다. “제 할머니는 12명을 낳았다. 어머니는 6명을 낳았다. 나는 자식이 없다. 1인 가구다. 사회적으로도 인구 절벽이 오고 있다. 25년 후에는 우리 사회의 36% 이상이 1인 가구라고 한다. 그러니 사람들은 갈수록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진다. 동시에 소외감과 외로움, 불안감도 커진다. 이러한 사회적 변동이 종교에게 새로운 역할을 찾아내라고 압박하고 있다.”

그게 어떤 역할인가.
“현대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무엇 때문인지 아나. 그들이 종교에 기대하는 가장 절실한 게 뭔지 아나. 깨달음이나 해탈, 혹은 구원 같은 궁극적 지향이 아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이다. 저 역시 도심의 선원에서 그걸 찾기 위한 모험과 실험을 하고 있다.”

인경 스님의 실험, 그 핵심은 ‘명상’이다. “이제는 종교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뭔가를 예전처럼 대규모로 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소규모의 개인적인 맞춤형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자기 아픔이나 불안을 나누며 소통하는 활동 중심의 운영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실질적 명상 중심의 종교 활동이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40~50년 후에는 이런 부분이 훨씬 더 많이 요청되지 않을까.”

명상은 어떤 식으로 현실 문제를 해결하나.
“10년 전만 해도 ‘휴식형 명상’이 많았다. 세상이 하도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으니까 ‘템플스테이나 산사에 가서 마음의 휴식을 좀 취하자’는 식의 명상이었다. 요즘은 달라졌다. 사람들은 명상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직장 내 문제, 가족 내 문제, 진로 문제, 이성 문제 등을 말이다. 이제는 종교가 거기에 답을 해줘야 한다. 기존의 ‘기도형 종교’로는 현실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
‘기도형 종교’는 왜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나.
“기도는 마음의 평화나 위안을 준다. 그러나 현실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이나 현실에 대한 통찰을 직접적으로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그 점에서 명상은 마음의 안정도 주고, 현실 문제에 대한 해법도 직접적으로 터치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50대 남성인데 항상 팔이 아팠다. 병원에 가면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아파서 마사지도 받고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러다 명상을 하면서 아픈 부위에 집중했다. 그랬더니 6살 때 기억이 떠올랐다. 집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웃목에 누워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무척 사랑했다. 6살 아이는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려 했고, 어머니와 친척들은 아이의 팔을 잡고 말렸다. 아이는 울면서 가려 하고, 사람들은 뒤에서 팔을 잡아당겼다. 밀고 당기는 와중의 통증이었다. 그게 어깨의 통증이었다.”
어떻게 해결했나.
“그 남성은 명상을 통해 기억 속 당시 풍경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자신이 방해받고 거부당한 상황에 충분히 머물고, 충분히 느끼고, 충분히 바라보았다. 그제야 알았다. 팔의 통증은 아버지에 대한 상실감과 연결돼 있었다. 그렇게 명상을 마치자 오랫동안 저리던 팔의 통증이 사그라들었다. 명상을 이끌던 나도 놀랐다. 그때 실감했다. 마음과 몸이 정말 둘이 아님을 말이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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