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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정부에 '양자협의' 요청"… 한ㆍ일 WTO 분쟁해결 막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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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6월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의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산업부]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6월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의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산업부]

한국 정부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3일 일본 정부에 양자협의를 공식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양자협의는 우리 정부가 대응책으로 꼽는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절차 상 첫번째 조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일 주한 일본 대사관을 통해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와 관련한 양자협의를 요청한다"는 의견을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고 4일 밝혔다. 산업부는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를 주도한 경제산업성의 한국 측 카운터파트다.

이날 유명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각종 국제 규범을 들어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한국 정부는 국제 규범에 반하고, 과거 일본의 주장 및 발언과도 배치되며, 세계 경제 발전을 위협하는 일본의 수출 통제 강화조치를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중구 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일본 수출통제 관련 관계기관 회의’에서다. 회의엔 산업부 통상 관련 부서와 반도체ㆍ디스플레이협회, 무역협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전략물자관리원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유 본부장이 일본을 규탄하며 근거로 꺼내 든첫 번 째 국제규범은 ‘바세나르 체제’ 기본지침이다. 이 지침은 다자간 전략물자 수출 통제 시스템의 근간으로 꼽힌다. 그는 “바세나르 지침은 ‘모든 회원국이 특정 국가나 특정 국가군을 대상으로 하지 않을 것이며, 선량한 의도의 민간거래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일본 조치는 한국만을 특정해 선량한 의도의 양국 민간기업 간 거래를 제한하는 것으로 바세나르 지침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전략물자 수출통제 제도는 국제평화ㆍ안전유지란 취지에 맞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공정하게 운영돼야 한다”며 “일본이 ‘신뢰 훼손’이란 자의적 주장을 하면서 수출 제한 강화 조치를 발동하는 것은 전략물자 수출통제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한국이 관련 규정을 성실히 지키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전략물자 4대 수출통제체제 및 3대 조약에 모두 가입한 모범국가로서 관련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다”며 “바세나르 체제 회원국으로부터 전략물자 관리에 대해 어떤 지적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이 책임 있는 전략물자 국제 수출통제 당사국이라면 한국이 제안한 양자 협의에 응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도 언급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11조가 대표적이다. 원칙적으로 상품 수출에 대한 금지ㆍ제한을 허용하지 않는 내용이다. 그는 “일본이 ‘신뢰 관계 훼손’ 등 불명확하고 WTO 협정상 근거 없는 이유를 들어가며 일방적으로 한국에 대해서만 수출통제 조치를 강화한 것은 WTO 제반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근거 삼은 국제 규범은 일본이 지난주 의장국으로 참여한 G20 회의 선언문이다. 그는 “일본은 G20 회의에서 ‘자유롭고 공정하며 비차별적인 무역환경 구축’이란 오사카 선언을 채택했다”며 “자국이 주도한 합의 정신에 반하는, 모순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가 한ㆍ일을 넘어선 세계 경제에 부작용을 미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그는 “일본의 조치는 양국경제 관계를 훼손할 뿐 아니라 세계 무역질서와 제3국 기업에도 심각한 피해를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며 “오랜 기간 정착된 글로벌 공급체계를 흔들어 세계 경제에 큰 불확실성과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 스스로의 노력도 설명했다. 그는 “정부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우리 산업에 대한 장단기 영향을 점검하는 한편 핵심 소재ㆍ부품ㆍ장비의 수입선 다변화, 국제경쟁력 및 국내 조달망 강화 등을 위해 조만간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유 본부장은 3~7일로 예정된 중남미 해외 출장을 전격 취소한 뒤 일본과 통상 마찰 대응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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