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가장 위험한 골프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430여 m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골프채를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골프코스’ 중 하나로 평가받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골프장에서 겪는 상황이다. 정규 코스와 별도로 만든 19번 홀(파3)은 한국의 인왕산(338m)보다 약 100m 더 높은 고도에서 티샷을 한다. 500m 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그린의 방향은 낭떠러지다. 오금 저리는 경험을 하려고 관광객들은 헬기를 타고 티잉그라운드에 오른다.

한국에도 그만한 담력을 요구하는 골프코스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골프코스(THE WORLD’S MOST DANGEROUS GOLF COURSE)’라는 표지판이 남아 있다. 판문점을 지키는 부대 ‘캠프 보니파스’에 있는 170m짜리 홀(파3)이다. 비무장 지대(DMZ) 인근이라 지뢰에 둘러싸여 있었다. 러프에 공이 떨어지면 지뢰가 터질까 봐 찾지도 못했다. 미국 스포츠전문지 등에 “가장 치명적인(lethal) 골프코스”로 소개돼 유명세를 치렀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캠프 보니파스를 방문하면서 이런 판문점의 뒷얘기들이 거론됐다. 부대의 이름이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 숨진 장교(아서 보니파스 대위)의 것이라는 슬픈 역사도 부각됐다. 위험했던 과거는 이제 새로운 스토리에 자리를 내주게 될까.

남·북·미 지도자들은 이번 만남을 “역사적 사건”이라고 했다. “나쁜 과거를 연상케 하는 장소에서 오랜 적대 관계였던 (북·미) 두 나라가 평화의 악수를 하는 것 자체가 어제와 달라진 오늘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말이 허풍이 아니길 바란다. 지뢰가 목숨을 위협하던 골프코스가 가장 평화로운 골프장으로 재탄생하는 반전도 기대해 본다.

김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