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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 때문에 지옥에 다녀온 320야드 장타자...이원준 13년만에 우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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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13년만에 첫 우승한 이원준. [KPGA/민수용]

프로 13년만에 첫 우승한 이원준. [KPGA/민수용]

320야드 드라이브샷을 펑펑 날리는 190cm의 거구 이원준(34)이 1m 정도의 퍼트를 넣지 못해 지옥에 다녀왔다. 30일 경남 양산 에이원 골프장에서 벌어진 KPGA 챔피언십 최종라운드 13번홀에서다.

호주 교포인 이원준은 불운한 선수다. 어릴 적 농구를 했는데 키가 어중간해 그만뒀다. 15세 때 골프를 시작해 금방 실력이 늘었다. 특히 큰 키를 활용해 평균 320야드, 필요하면 350야드를 치는 장타가 압권이었다. 이원준은 아마추어 세계 랭킹 1위를 한 후 2006년 말 프로로 전향했다. 당시로써는 어마어마한 장타자였기 때문에 21세이던 2007년 LG전자와 10년 계약을 했다.

그러나 성과는 내지 못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진출을 위해 미국 2부 투어에서 5년여를 보내다가 손목과 허리가 아파 그만뒀다. 2년여를 쉬다 재기해 일본 투어 출전권을 얻었지만, 다시 허리가 아파 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면서 프로 13년 동안 한 번도 우승을 해보지 못했다. 1부 2부를 막론하고 어떤 투어에서도 우승이 없었다.

이번엔 다를 것 같았다. 이원준은 추천 선수로 참가한 KPGA 챔피언십에서 1라운드 62타, 2라운드 64타를 쳤다. 최종라운드를 5타 차 선두로 출발해 여유가 있었다. 5번 홀에서 공을 물에 빠뜨려 더블보기를 했지만 8~11홀에서 버디 3개를 잡으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듯했다.

그러나 문제의 13번 홀, 짧은 퍼트를 못 넣어 보기를 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원준이 유리한 파 5홀이어서 더 아팠다. 추격자인 서형석은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아냈다. 타수 차는 3에서 1로 줄었다. 경기는 살얼음판이 됐다. 이원준은 "경사를 잘 못 봤다"고 말했다.

이원준은 바로 다음 홀에서 만회할 기회를 잡았다. 3m 버디 기회를 만들어놨다. 그러나 퍼트한 공은 홀까지 가지 못했다. 운도 나빴다. 16번 홀에서는 버디 퍼트한 공이 홀 끝에 걸쳐 들어가지 않았다. 규칙에 허용된 10초를 기다려봤지만, 공은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이원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7번 홀에서 이원준은 프린지에서 친 퍼트가 짧았고, 2m 파 퍼트도 홀까지 가지 못했다. 이원준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결국 17번 홀에서 이원준과 서형석은 동타가 됐다.

에이원 골프장의 18번홀은 페어웨이 양쪽에 물이 있는 어려운 홀이다. 우승 경쟁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선수들에겐 티샷이 매우 불안하다.

챔피언조 첫 티샷을 한 서형석의 공은 왼쪽으로 갔다. 다행히 갤러리에 맞고 물에 빠지지는 않았다. 두 번째 티샷한 이태훈은 오른쪽으로 보냈다. 물쪽으로 갔다. 마지막 티샷하는 이원준의 부담감은 더 커졌을 것이다. 걱정대로 됐다.

이원준의 티샷도 오른쪽 페널티 구역의 호수로 갔다. 다행히 공은 반쯤 보였다. 이원준은 물에 있는 공을 쳐낸 뒤 세 번째 샷을 약 2m에 붙였다. 이원준으로서는 리드를 다 날리고 질 위기에서 살아나왔다. 지옥에 다녀온 셈이니 이제는 손해볼 것도 없었다.

이전까지 짧은 퍼트를 어려워하던 이원준은 만만치 않은 이 퍼트를 넣어 연장전에 접어들었다. 18번홀에서 치른 연장에서 서형석은 오르막, 이원준은 내리막 퍼트를 남겨뒀다. 거리는 약 3m로 비슷했다. 오르막 퍼트를 남긴 서형석이 유리했다. 그러나 서형석의 퍼트는 들어가지 않았고 이원준은 내리막 퍼트를 집어넣고 13년간의 한을 풀었다.

이원준은 어머니와, 지난해 결혼한 발레리나 출신 부인과 포옹했다. 이원준은 “아버지가 10년 넘게 고생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라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이원준은 고국에서 악몽을 털어냈다.

이원준은 최종라운드 1오버파 71타로 서형석과 함께 합계 15언더파를 기록했다. 이원준은 2024년까지 코리언투어 출전권을 갖게 됐다. 이원준은 지난해 결혼, 인천 청라에서 살고 있다. 이원준은 “아직 PGA 투어 진출의 꿈은 버리지 않았다. 잘 준비해서 다시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조민규와 예선을 거쳐 대회에 출전한 전준형이 1타 차 공동 3위를 기록했다.

양산=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첫 기사에 이원준의 13번홀 파 퍼트 거리가 50cm라고 표기했다가 1m로 정정했습니다. KPGA 기록에 13번홀 파 퍼트 거리가 50cm로 나왔으나 이원준 선수가 1m라고 확인해 거리를 정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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