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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쇼어링', 잘 활용하면 일자리 독(毒) 아닌 약(藥)

중앙일보

입력

충남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와 같은 제조업 기업이 해외로 이전하더라도 생산성·혁신성이 높으면 국내 고용을 늘릴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연합뉴스]

충남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와 같은 제조업 기업이 해외로 이전하더라도 생산성·혁신성이 높으면 국내 고용을 늘릴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연합뉴스]

기업이 생산시설과 일자리를 해외로 옮기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은 반드시 부정적이기만 할까.

일반적으로 기업의 해외 이전은 국내 고용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런 통념을 뒤집은 연구결과도 있다. 단 생산성과 혁신성이 높은 기업이어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달렸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간한 ‘수출입과 기업의 노동수요’ 보고서에 따르면 생산성과 혁신성이 높은 기업은 해외 이전 이후에도 국내 고용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음지현 부연구위원·박진호 연구위원·최문정 부연구위원 등은 2006~2014년 약 500개 제조업체를 분석해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중간재 등을 수입하는 것과 완성된 제품을 수출하는 것이 국내 고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따져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 생산기반을 둔 기업이 수입을 늘릴수록 고용은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났다. 원자재·중간재 수입이 늘어날수록 국내 노동자가 일할 기회가 줄어들어서다. 하지만 수출이 늘면 기업의 수익성이 높아지고 생산도 늘어나 국내 고용도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생산시설과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한 기업은 통념대로 국내 고용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프쇼어링 기업은 국내보다 저렴한 인건비와 판매 시장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데, 노동수요 역시 해외로 빠져나가 국내 고용이 전체적으로 줄었다.

하지만 생산성·혁신성을 높인 경우, 다른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기업의 1인당 매출액이 전체 기업 평균보다 높고 ▶특허·실용신안·디자인권·상표권 보유 수가 중간값보다 높은 기업을 분석한 결과 오프쇼어링 이후, 원자재·중간재를 수입이 늘어나더라도 국내 고용이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의류제조업체가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해외로 진출한 기업도 생산성·혁신성이 높으면 국내 고용을 창출할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사진 중앙포토]

한국 의류제조업체가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해외로 진출한 기업도 생산성·혁신성이 높으면 국내 고용을 창출할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사진 중앙포토]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 국내에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을 때 원자재·중간재 수입이 1% 늘어날 때마다 고용은 감소(-0.019%)했다. 반면 생산성이 높은 오프쇼어링 기업은 같은 조건에서 고용이 증가(0.008%)한 것으로 나타났다. 혁신성이 높은 기업도 국내에 생산시설을 뒀을 때 수입이 1% 증가할 때마다 고용이 감소(-0039%)했지만, 해외로 이전한 경우엔 오히려 증가(0.036%)했다.

생산성과 혁신성 제고라는 조건이 달리긴 했지만 오프쇼어링 기업의 국내 고용이 늘어난 이유는 뭘까. 보고서는 생산비용 절감 효과가 더 크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음지현 부연구위원은 “노동·물류비용을 줄여 제조원가를 낮추면 생산 외의 국내 고용을 늘릴 여력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연구·개발(R&D) 등 직접 생산과 관련 없는 고부가 일자리가 자연스럽게 창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이를 ‘생산비용 절감→상품가격 하락→수요 증가→생산 증가의 선순환 구조로 설명했다. 음 부연구위원은 “생산성과 혁신성이 높은 기업은 비용절감 효과가 국내 고용창출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오프쇼어링을 하더라도 낮아진 생산비용을 고용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효과가 일어날 가능성을 보여준 결과”라고 설명했다.

윤상언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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