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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ㆍ장필순ㆍ빛과소금…30년 전 곡들 강제 소환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온스테이지 디깅클럽서울’을 통해 장필순의 ‘어느 새’ 리메이크를 선보인 백예린.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온스테이지 디깅클럽서울’을 통해 장필순의 ‘어느 새’ 리메이크를 선보인 백예린.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지난해 5년 만에 정규 앨범 ‘soony eight - 소길花’를 발표한 장필순. [사진 아트인터내셔널]

지난해 5년 만에 정규 앨범 ‘soony eight - 소길花’를 발표한 장필순. [사진 아트인터내셔널]

가요계가 ‘숨은 명곡 찾기’에 빠졌다. 시대를 앞서간 노래, 가요 흐름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노래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것. 네이버 문화재단과 스페이스오디티가 손잡고 진행하는 프로젝트 ‘디깅클럽서울’이 대표적이다. 싱어송라이터 김현철 원곡을 죠지가 다시 부른 ‘오랜만에’(1989) 등 5곡으로 지난해 9월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호응에 힘입어 이달부터 시즌 2를 시작했다. 첫 주자는 감성 보컬로 주목받는 백예린. 장필순의 ‘어느 새’(1989)를 다시 불렀다.

시티팝 재조명 프로젝트 ‘디깅클럽서울’ #알앤비 ‘KRNB’ 등 장르별 리메이크 인기

김현철ㆍ장필순 외에도 당시 활동하던 뮤지션들이 줄줄이 재소환되고 있다. ‘월간 윤종신’이 설립 30주년을 맞은 의류 브랜드 빈폴과 손잡고 진행한 ‘이제 서른’ 프로젝트는 ‘그대 떠난 뒤’(빛과 소금), ‘춘천가는 기차’(김현철), ‘기분 좋은 날’(김완선)을 선정했다. 모두 1989년도에 발표된 노래로, 그 해 태어난 장범준ㆍ태연ㆍ어반자카파 등이 다시 불렀다. 요즘 나온 신곡들과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음악도 뉴트로 열풍 타고 복고 바람 

‘오랜만에’ 리메이크 작업으로 인연을 맺어 함께 무대에 오른 김현철과 죠지. [사진 네이버 온스테이지]

‘오랜만에’ 리메이크 작업으로 인연을 맺어 함께 무대에 오른 김현철과 죠지. [사진 네이버 온스테이지]

무엇이 이 노래들을 다시 주목하게 만들었을까.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당시는 88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젊은 세대의 도시문화가 본격적으로 창궐한 시기”라며 “가파르게 경제가 성장하고 세계 각지에서 세련된 문화가 유입되던 그 시기에 대한 향수가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김현철, 빛과 소금 등의 80년대 후반 음악은 이제 ‘시티팝’으로도 주목받는다. 시티팝은 일본 경제 호황기 인기를 누린 도시적 감성의 음악 스타일. 최근 일본도 시티팝이 다시 인기다.

스페이스오디티 김홍기 대표는 “90년대 태어난 20대 입장에서는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지만 풍요로운 시절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전체 경제 규모로 보면 지금이 더 풍족한 세상이지만, 80년대 중후반 한국 경제성장률은 지금과 달리 두 자리 수에 달했다. 여기에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기는 ‘뉴트로’ 유행도 맞아떨어졌다. 김 대표는 “리메이크한 노래들은 카세트테이프로 발매되지 않았음에도 그 당시처럼 직접 테이프를 만들어 워크맨으로 듣는 경우도 꽤 많이 봤다”며 “음원차트 1~100위처럼 모두가 듣는 음악이 아닌 나만 찾아 듣는 음악으로 자리매김해 힙스터 이미지와도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시티팝의 대표주자 격인 김현철은 13년 만에 음악 활동을 재개했다. 지난달 미니앨범을 시작으로 올가을 정규 10집 발표를 예고한 그는 죠지가 재해석한 ‘오랜만에’를 듣고 가슴에 다시 불이 붙었다고 했다. “함께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는 동안 오랜만에 음악을 다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팔았던 악기도 다시 사고, 라디오 DJ까지 그만두고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했다”는 것. 두 사람은 듀엣곡 ‘드라이브‘를 선보이는 등 새로운 음악적 계보를 그리고 있다.

“리메이크 횟수도 좋은 곡 척도”

기존 가요를 알앤비 스타일로 리메이크하는 프로젝트 ‘KRNB’를 진행 중인 진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기존 가요를 알앤비 스타일로 리메이크하는 프로젝트 ‘KRNB’를 진행 중인 진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 가요를 리듬 앤드 블루스(R&B)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움직임도 있다. 프로듀서 진보가 2012년 시작한 ‘KRNB’ 프로젝트는 윤수일의 ‘아파트’(1982)부터 트와이스 ‘TT’(2016)까지 다양한 시대를 풍미한 20여곡이 쌓였다. 지난달에는 자이언티ㆍ조원선과 함께 부른 ‘달리기’(2000)를 공개했다. 윤상 원곡의 ‘달리기’는 이전에 S.E.S.ㆍSG워너비ㆍ옥상달빛 등도 리메이크했다.

진보는 “학술논문이 피인용 횟수가 많을수록 권위를 인정받는 것처럼, 후배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불린 노래 역시 그만한 가치가 있다”며 “과거의 명곡이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입고 계승되는 것 역시 국민가요를 만드는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는 리메이크가 미국ㆍ일본 등 해외에서 들어온 번안곡 위주였다면 이제는 한국 대중음악도 얼마든지 재가공될 만큼 충분한 역량이 쌓인 것 같다”며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듣는 국내외 K팝 팬들 역시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K알앤비 등 더 다양한 장르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험적인 음악으로 호평받아온 윤상. 3집 수록곡 ‘달리기’는 여러 차례 리메이크됐다. [사진 오드아이앤씨]

실험적인 음악으로 호평받아온 윤상. 3집 수록곡 ‘달리기’는 여러 차례 리메이크됐다. [사진 오드아이앤씨]

거장의 명곡 리메이크 역시 이어진다. 서현이 다시 부른 ‘친구여’를 시작으로 ‘리스펙트 레전드’ 조용필 편을 선보이고 있는 제작사 쿠키의 한희 대표는 “조용필의 숨겨진 명곡을 엄선해 순차 공개할 예정”이라며 “내년에는 이미자 편을 준비하고 있다. 추후 장르를 확대해 계속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재도 다양화되고 있다. 2000년대 초 열풍을 일으켰던 싸이월드 미니홈피 시절 배경 음악도 리메이크 대상이다. 헤이즈가 시작한 월간 리메이크 프로젝트는 첫 곡으로 캔디맨의 ‘일기’ 커버 영상을 선보였다.

서정민갑 음악평론가는 “과거 개별 가수의 성과로 여겨져 온 업적이 장르별로 재조명되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움직임”이라며 “히트곡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가 이뤄진다면 한국 대중음악사에도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동안 ‘불후의 명곡’ 등 TV 예능을 통해 리메이크된 곡들이 신구 세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면 이제 시티팝ㆍ알앤비 등 최근 떠오르는 장르의 곡들이 쏟아져 나와 스타일리시한 취향을 대변할 수 있는 매개체로 활용되는 것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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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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