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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9년만에 새 앨범 “포기할뻔…유희열 덕분에 가능”

중앙일보

입력

9년만에 새 앨범 ‘아베크 피아노’를 발표하는 정재형. 파아노와 함께 한 연주앨범이다. [사진 안테나]

9년만에 새 앨범 ‘아베크 피아노’를 발표하는 정재형. 파아노와 함께 한 연주앨범이다. [사진 안테나]

‘노래하는 사람’을 가수라 칭한다면, 정재형(49)은 어디에 속할까. 1995년 3인조 밴드 베이시스로 데뷔해 25년여의 세월을 대중음악계에서 보냈지만, 그가 선보인 음악은 가요보다는 클래식 혹은 그 경계 어딘가에서 열심히 물장구를 치고 있는듯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피아노 연주앨범 ‘아베크 피아노’ 발표 #‘르 쁘띠 피아노’ 잇는 3부작 연작 앨범 #소속사 대표이자 후배 가수 유희열 #“형은 피아노 칠 때 가장 멋있다” 격려

9년 만에 내놓은 새 앨범 ‘아베크 피아노(Avec Piano)’ 역시 연주앨범이다. 그는 마이크 앞에서 노래하는 대신 피아노 앞에서 연주하는 방식을 택했고, 곡에 따라 바이올린ㆍ비올라ㆍ첼로ㆍ클라리넷 등이 더해졌다. 프랑스어 제목 그대로 ‘피아노와 함께’ 하는 앨범인 셈이다.

“하루 3~4시간 자도 음악 만드니 행복”

10일 앨범 발매를 앞두고 소속사 안테나의 서울 신사동 사무실에서 만난 정재형은 “언젠가 해야 할 작업이지만 막막한 마음에 선뜻 시작하지 못했던 앨범”이라고 밝혔다. 2010년 피아노 연주앨범 ‘르 쁘띠 피아노(Le Petit Piano)’를 낼 때부터 ‘아베크 피아노’를 거쳐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르 그랑 피아노(Le Grand Piano·가제)’로 이어지는 3부작 연작 앨범을 기획했지만 실로 방대한 작업이었던 탓이다.

이소라ㆍ엄정화ㆍ아이유의 작곡가로도 유명한 정재형은 ’여전히 끙끙대며 음악을 만든다“며 ’현재 내 앨범 만들 곡 7~8곡 정도 밖에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곡을 주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안테나]

이소라ㆍ엄정화ㆍ아이유의 작곡가로도 유명한 정재형은 ’여전히 끙끙대며 음악을 만든다“며 ’현재 내 앨범 만들 곡 7~8곡 정도 밖에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곡을 주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안테나]

그는 “소속사 대표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앨범이었다”며 유희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피아노 치는 형이 제일 멋있다, 이 시리즈를 꼭 완성해보자며 기다려주지 않았더라면 나조차 포기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불을 붙여준 것은 지난해 출연한 음악 예능 ‘건반 위의 하이에나’. 안테나 레이블 미국 투어까지 겹쳐 하루 3~4시간 자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음악할 때 이렇게 행복한 사람이었구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했다.

3년간 진행하던 KBS 라디오 ‘정재형 문희준의 즐거운 생활’ DJ 자리도 내려놓고, 지난해 봄 일본 가마쿠라로 떠났다. 3주간 그곳에 머무르며 앨범의 실마리를 잡아갔다. “처음엔 너무 산중이라 무섭더라고요. 그런데 점점 자연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충만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서핑 마니아로도 유명한 그는 “파도를 보면서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얼핏 보면 잔잔한 것 같지만, 그 안에 들어가서 보면 굉장히 클 때도 있다. 그 속에서 남들한테 말하지 못하는 슬픔과 버거움 등이 씻겨나가기도 한다”다고 밝혔다.

서울대 교수인 백주영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연주한 타이틀곡 ‘라 메르(La Mer)’는 이런 바다의 양면성이 담겨 있다. 서울시향 수석 첼리스트 심준호와 함께한 ‘미스트랄(Mistral)’이나 백주영ㆍ심준호 등 세 사람이 협연한 ‘르 몽(Le Mont)’의 정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곡명은 프랑스어로 각각 바다, 바람, 산을 뜻한다. 서울시향 클라리넷 수석 임상우와 합을 맞춘 ‘그곳, 아침에서’까지 전체 8곡 중 4곡이 이 작업여행에서 쏟아져 나왔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과 함께 신곡 무대를 선보인 정재형. [사진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과 함께 신곡 무대를 선보인 정재형. [사진 KBS]

프랑스 파리고등사범음악원에서 유학한 그는 “일부러 프랑스어 제목을 붙였다기보다는 상상력을 제한하는 직관적인 표현을 피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연주 음악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는 청자들을 위해서 오디오 가이드도 마련했다. 안효진 제작실장은 “참고용으로 보내준 설명이 너무 좋아 도슨트 서비스처럼 제공하게 됐다”며 “음악이 설명에 갇히는 게 아니라 더 많은 풍광을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능 덕분에 음악적 시선 넓어져”

무엇이 그를 가장 괴롭혔던 걸까. 정재형은 즉답을 피했지만 지난 몇 년간 음악 작업에 매달린 뮤지컬 ‘웃는 남자’의 여파가 큰 듯했다. 당초 CJ ENM과 EMK뮤지컬컴퍼니는 2015년부터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창작뮤지컬 작업에 들어갔으나 CJ 측은 보다 완성도 있는 작품을 위해 제작을 연기한 반면, EMK는 지난해 첫선을 보여 큰 성공을 거뒀다.

1997년 ‘마리아와 여인숙’을 시작으로 영화 OST 작업을 시작한 정재형은 처음 도전하는 뮤지컬에 대한 애정도 상당했던 터였다. 그는 “방대한 서사를 2시간으로 압축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고 뮤지컬은 영화와는 또 다르게 많은 사람과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이 필요한 작업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정재형이 서울 신사동 안테나 사무실에서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안테나]

정재형이 서울 신사동 안테나 사무실에서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안테나]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된 것도 영화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폭넓은 경험이 필요하겠구나 싶어서였거든요. 돌아와서 만든 ‘중독’(2002)은 완전 클래시컬한 앨범이고, ‘Mr. 로빈 꼬시기’(2006)는 재즈가 중요해서 뉴욕에서 작업했어요. ‘우리집에 왜 왔니’(2009)는 제작비가 적어서 제가 컴퓨터로 다 했지만 모든 작품이 다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한 작품 할 때마다 많은 걸 배웠고.”

데뷔 이후 프랑스 유학 갔던 이유는 

KBS2 ‘불후의 명곡’ 등 예능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그는 “그전에는 내가 생각하는 틀 안에서 음악을 깊게 바라봤다면, 다양한 출연진을 보면서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졌다”며 “음악을 만들 때는 완벽해지고 싶어서 스스로 많이 괴롭히는 편이지만 예능인으로서 행보는 좀 더 가볍게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그가 현재 가요계에서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접목한 ‘제2의 베이시스’로 꼽는 팀은 누굴까. “요즘은 다 잘하는 것 같아요. JTBC ‘슈퍼밴드’를 보면 바이올린이나 첼로 하는 친구들도 나오고, 정승환ㆍ샘킴ㆍ이진아 같은 안테나 친구들을 봐도 각자 다른 스타일로 넓혀 나가고 있잖아요. 저는 뭐가 맞고 틀린 건지 잘 모르겠어서 심사위원은 못 할 것 같고, 클래식 악기를 가지고 국내 골목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하는 예능 프로는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저에게 예능은 음악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돕는 매개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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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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