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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금은 낯설지 않은 말이 된 여소야대의 13대 국회가 개원된지도 이번 달로 1년2개월을 맞게된다. 1년2개월 전, 13대 국회가 성립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적지않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야당의 의석수가 여당보다 많다는 수치적 우세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몇 가지 희망적인 기대를 걸고 있었다. 우선 야당의 수적인 우세 한가지만으로도 행정부의 독주에 대한 삼엄한 감시기능은 십분 발휘되리라 믿었다. 또한 제5공화국이 빚어놓은 비리를 척결·청산하는데 순발력을 발휘하리라는 기대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남은건 짙은 배신감>
그러한 국민들의 기대 못지않게 야대의 그릇에 몸담고 있는 정치인들은 눈에 띄게 서두르기 시작했고, 반면 여소에 몸담고 있는 정치인들은 의기소침해 가위에 눌린 형용을 짓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 많은 국민들은 정치권의 낯설고 미묘한 구도에 대해 일말의 쾌감을 누렸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야말로 사소한 한가지인들 여당이라해 자기들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게 되었구나하는데서 느끼는 다행스러움에 적지 않은 위안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13대 국회가 개원된 지 14개월이 넘었다. 열 넉달 이라는 시간의 거리는 한번쯤 그 증적을 되돌아보기에는 충분한 염치를 지닌 공간의 거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되돌아봄에 대한 염치가 허용되는 것이라면 우리들 대다수가 느끼고 있는 심정은 한마디로 짙은 배신감과 허탈이다. 14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 나라의 국회의원들은 그들의 임기가 14년쯤이나 되는 것처럼 느긋해 보인다.
그래서 우리들의 국회는 국민들의 삶과 생각과는 괴리된 징조 속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지워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이 당연하게 해야할 일은 제쳐두고 엉뚱한 일들만 골라 저지르고 있다는 규탄을 모면하기 어렵게되었다.
어떤 국회의원은 북한의 허담에게 정치자금을 받아쓰고도 우리 국민들이 뽑아준 국회의원직을 떳떳하게 지니고 있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대체 이해하기 곤란한 행동과 생각인데도 본인은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

<고개 드는 6공 비리>
그런 천둥벌거숭이같은 태도에 어떤 논리가 먹혀들겠으며, 어떤 설득이 주효할 수 있을까. 다만 아연하고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어떤 국회의원은 동해시 재선거에서 경쟁후보를 돈으로 매수하다가 들통나 구속이란 쓰디쓴 맛을 보았고, 어떤 국회의원은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국정감사자료들을 스스럼없이 유출시켰다한다.
제5공화국의 비리청산은 아직도 요원한데 벌써 6공의 비리가 움트고 가지뻗어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고 있다는 것에 우리들의 혐오감은 가중된다. 그래서 어떤 분은 벌써 5공의 비리가 아니라 6공의 비리부터 청산해야 할 기막힌 사태에 직면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뒷마당을 말끔하게 쓸고 정리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앞마당에 모여
앞마당부터 어지럽히고 있다면 그것은 갓부터 쓰고 망건 쓰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망발과 다를 것이 없기에, 6공의 비리부터 해결하자는 주장이 갖는 설득력이 있다.
나이 어린 여학생이 기어코 판문점 길을 통해서만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단식과 농성을 하고있어도, 그리고 미워하고 있는 나라의 영주권을 가진 신부가 북한으로 갈 때나 돌아오러 하고 있는 지금이나 두 눈과 팔다리가 멀쩡한 그 여학생을 선도하겠다고 설치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따끔하거나 시원한 대응없이 오직 느긋하다.
그래서 도처에서 이 나라의 주인임을 자처하고, 저마다 통일염원의 선두주자임을 자처하고 나서는데도 선뜻 그 등에 넙죽 업힐만한 대목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무릇 우매함 때문일까.
사회 곳곳에서 쉴새없이 분출되고 있는 욕구와 불만을 모두 정치권으로 수렴해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그 숱한 장담들은 지금은 어느 벼랑으로 추락하고 말았는지 뒤통수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금쪽같이 소중했던 청문회를 열었을 때, 우리는 텔리비젼 수상기에 나타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에서 얼마나 큰 혐오감을 느꼈던가. 그 청문회장은 자기 과시의 유세장이었고 자기가 속해있는 정당의 선전장이었다면 어느 정도의 수긍은 가능했었지만, 그 곳이 5공의 혐의를 아금받게 도려내어 치유하고 마무리 짓는 일에 과연 얼마의 기동력을 발휘했었는가.
그것에 대한 의구심은 날이 갈수록 진한 앙금으로 가슴에 남는다.
이러한 정치권의 부정적인 측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여소야대가 지니는 구도적인 가치관을 다시 되씹어 볼 필요를 느낀다. 큰 것에 대해 작은 것은 무조건 승복해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동물적인 통념이 정치권의 가치관으로 정착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자기 과시에만 급급>
그리고 작은 것은 큰 것에 일찍이 주눅들어 자생력을 잃고 도망치거나 뿌리치는 것만이 능사라는 저급한 상식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반드시 피비린내가 나야만 이기고 지는 것이 명료하게 판가름나는 웨스턴 영화의 결말이 곧 정치적 해결의 결말로만 여기고 있는 정치인들은 없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고사하고 이 나라가 큰 일이다. 우리가 이 나라의 정치에 이토록 끈질긴 관심을 갖고 살고있는 까닭은 우리의 정치는 오늘 저녁 당장 우리들의 식탁에 놓여질 반찬 그릇의 수효와 발걸음 하나 하나에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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