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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대보다 우려가 더 앞서는 시진핑 방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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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오늘부터 북한을 방문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면서 북·미 협상 재개 가능성이 예상되는 등 미묘한 시점에 이뤄지는 방북이다. 28일 오사카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시 주석의 방북을 계기로 하노이 노딜 이후 정체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이 복원되기를 기대한다. 중재자나 촉진자 역할을 한국이 맡든, 중국이 대신하든 비핵화에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진다면 얼마든지 환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시 주석이 방북을 결단한 전략적 배경을 짚어보면 우려스러운 점이 적지 않다. 우선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이번 방북을 지렛대로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중국만이 갖고 있는 대북 영향력을 과시하고 북한과의 밀착을 강화함으로써 미국에 맞서는 카드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읽히기 때문이다. 중국 국영방송이 최근 집중적으로 6·25 관련 영화를 편성하면서 69년 전의 항미원조(抗美援朝) 를 다시 들춰내고 있는 것도 이런 의도와 맞물려 있다.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문제들이 미·중 패권 경쟁의 카드로 활용되는 현실은 대단히  걱정스럽고 심각한 일이다.

북·중 밀착이 비핵화의 진전에 도움은커녕 반대의 결과를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단계적·동시행동’ 방식을 고집하며 대북제재 완화란 당면 목표에 집착하면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요구하는 미국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만일 시진핑-김정은 회담이 북한의 방식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가 된다면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은 더욱 멀어진다. 시 주석은 이번 방북에 앞서 발표한 노동신문 기고문에서 “조선 측이 조선반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올바른 방향을 견지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시진핑-김정은 회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중국이 대북제재 장기화로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는 북한의 숨통을 터줄 가능성도 우려스럽다. 중국도 제재에 동참하고 있지만 북한을 도와주려고 마음먹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중국은 지난해 김정은의 네 차례 방중을 계기로 7년 만에 최대 규모의 비료와 쌀을 무상 지원했다. 그 자체로는 제재위반이 아니지만 외화벌이가 막힌 북한의 숨통을 터주면서 제재 효과를 저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역대 중국 지도자의 방북 선례를 보면 이번에도 대규모 원조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진핑 주석의 방중은 북·중 혈맹을 다지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 협상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북한이 의미있는 선제 조치를 취하고 성의있는 행동에 나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설득하고 촉구해야 한다. 중국이 대북 영향력을 비핵화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휘할 때 국제사회의 평가와 지지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