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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pick]'점입가경' 미·중 전쟁…"우리 기업 실리부터 챙겨라"

중앙일보

입력

미·중 무역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지난달 2000억 달러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10%에서 25%로 올렸다. 중국도 600억 달러의 미국 제품에 보복관세를 매겼다. 분쟁 '여파'는 통계로 나타난다. 미 최대 물류항인 롱비치항의 지난달 수입 컨테이너 물량이 1년 전보다 6.3% 줄었다. 투자심리도 위축했다. 13일 유엔무역개발회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외국인 직접투자(FDI)총액은 전년 대비 13% 급감했다. 무역 긴장, 보호주의 확대 탓이 크다. '수출 절벽'에 내몰린 한국의 생존방정식은 무엇일까.

다자통상전문가 박정욱 산업부 국장 인터뷰

주 제네바대표부 상무관 등을 역임한 다자통상 전문가 박정욱 산업통상자원부 국장에게 미·중 무역 전쟁의 본질과 한국의 전략을 물었다. 그는 최근 세계무역기구(WTO)에서의 경험을 담은『트럼프시대, WTO에 던지는 5가지 질문(박영사)』을 출간했다. 부제는 '다자무역체제에서 바라본 미·중 무역 전쟁의 본질'이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13일 인터뷰에서 그는 "미·중 무역 전쟁은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상황이다. 서로 양보가 없어 장기화할 수 있다"고 짚었다. 무역 세계 6위,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2위 국가로서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입장에선 촉각이 곤두서는 문제다. 미·중 사이 샌드위치가 된 '화웨이 사태'에 대해선 "기업이 실리를 취하도록 도와야 한다"며 "중립적으로 반응하되 한국은 자유시장 경쟁체제이고 민간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화하고 있다. [AP]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화하고 있다. [AP]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제일주의'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강대국이 관세 카드를 쓰는 건 과거에도 있었다.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의 아버지인 랜돌프 처칠은 19세기 말 "관세 정책을 해외시장 개척 수단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해외시장을 굴 까는 것에 비유하며 “깃털로 간질일 것이 아니라 강력한 칼을 사용하자"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모두 '칼'을 휘두르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에서 지금까지 누가 승자인가. 
단기적으로 미국이 유리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화하면 승자 없는 게임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과 유사하다. 둘 다 자기 이익만을 고려해서 선택하지만, 결과적으로 상대방과 본인 모두에 불리한 결과를 낳는다. 뚜렷한 승자가 없는 상황에서 글로벌 무역이 위축하며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가 예상된다. 
알면서도 왜 미국은 중국을 공격했나. 
'직접' 타격한 이유는 2가지다. 우선 중국의 급부상이 미국 경제와 패권에 위협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국 수입은 2001년 1023억 달러에서 2015년 4832억 달러로 늘었다. 같은 기간 대중국 수출은 192억 달러에서 1161억 달러에 그쳤다. 이 기간 미국의 무역적자는 연평균 11.2%씩 늘었다. 무역적자로 2001~2015년 미국 내 340만개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이 중에서 75%가 중국과의 무역적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일자리 증발'은 미국 내 50개 주 모든 주에서 발생했고 특히 전자부품 등의 피해가 컸다. 또 다른 이유는 WTO 규범만으로는 중국을 컨트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중국을 WTO 내에서 견제할 수 있었다면 미국이 굳이 중국을 콕 집어 건들지 않았다. 실제 미국이 관련된 WTO 분쟁의 3분의 2가 중국 때문에 발생했다. 중국은 WTO의 다자무역체제를 지지한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수입제품과 외국기업의 시장접근을 제한하는 정부 관여 정책을 쓴다. 중국이 작았다면 미국이 쉽게 눌렀을 것이고, 설사 강대국이어도 다자 체제에서 관리하면 좋은데 이 두 가지 다 안 먹혔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제품안전정책국장을 맡은 그는 통상 실무를 하는 동료에 누가 되지 않도록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인터뷰를 이어갔다)화웨이 사태의 경우, 기업이 실리를 취하도록 돕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대한 중립적으로 반응하면서 상대가 수긍할 메시지를 줘야 한다. "한국은 자유시장 경쟁체제이고 민간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게 핵심이다.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강점이 있는 수출을 키우되 중장기적 관점에서 온전히 국산 기술력으로 생산하는 제품을 늘려야 한다. 소비재뿐 아니라 비메모리 반도체·인공지능(AI)·바이오·2차전지, 설비 등 자본재(다른 재화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재화)수출을 키워야 한다. 미·중에 치중한 시장도 다변화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내수를 먼저 키우라고 하지만 한국은 내수 위주의 성장은 기약하기 어렵다. 내수는 국내적 충격이 있으면 결정타를 맞게 되는 데다 인구도 감소 중이라 의존하기엔 한계가 있다. 
박정욱 산업통상자원부 국장. 서유진 기자

박정욱 산업통상자원부 국장. 서유진 기자

무역 전쟁에 나라별 희비가 엇갈린다.  
일본과 베트남을 보자. 아무리 미국-일본이 가까워 보여도 안 봐준다. 미국의 전략은 일본을 좌우할 '레버리지'를 쥐는 것이다. 일본은 자국 주도의 경제협력체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주도하면서 미국의 압박을 피해가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과의 양자협정(TAG)을 통해 '농산물 시장을 더 열라'고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자동차 부품 및 관세에 대한 부과 결정(미 232조)마저도 6개월 연기하면서 일본·유럽연합(EU)·한국 등을 불확실성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향후 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전략이다. 반면 베트남은 중국과 경쟁 관계였는데 중국이 불리해지면서 저임금 매력을 살리게 돼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한국은 단기적인 '틈새시장' 이익도 있다. 가전·섬유·플라스틱·기계류 등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의 중국 제재품목 수입시장에서 중국산의 수입증가율은 -24.7%, 한국은 20.5%를 기록했다) 그러나 전체 교역이 줄 것이므로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이다. 우리 수출의 약 25%(70~80%는 중간재)는 중국, 15%는 미국이다. 직간접 효과를 합치면 한국의 수출 감소분은 8억7000만 달러(무역협회 추산)에 이른다.    
현 상황이 얼마나 장기화할까.  
트럼프 집권(미국 대선 시점은 2020년 11월)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미국 민주당·공화당 할 것 없이 여·야가 자국의 이익을 지키려는 입장은 공통적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미국 정부가 중국에 대한 공격(bashing)은 지속할 수 있다. 미·중 무역 전에서 관세는 수단의 하나이고 본질은 '기술전쟁'이며 '패권전쟁'이다. 중국의 강제적 기술 이전을 막고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고 중국 제조 2025 전략을 저지하는 게 미국의 목표다. 여기에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중국도 장기전을 각오하고 있다. 중국은 열강의 식민지가 된 아편전쟁의 기억을 잊지 않는다. 여기서 물러나면 영원히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쫓아가는 것밖에 안 된다. 중국은 1980년대 플라자합의(※합의 이후 2년간 엔화는 달러화에 대해 65.7% 절상→엔화 가치 상승→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일본이 어떻게 됐는지 이미 철저히 연구했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한 것에 대한 학습효과가 있다. 
 관세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촬영한 중국 위안화와 미국 달러의 모습. [연합뉴스]

관세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촬영한 중국 위안화와 미국 달러의 모습. [연합뉴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박정욱 국장은

행정고시(재경직) 35회로 1992년 공직에 입문했다. 산업부 아주통상과, 자동자조선과, 에너지관리과장, 부품소재총괄과장, 지역경제총괄과장을 거쳤다. 고위공무원으로 승진한 뒤 통상협력심의관, 주 제네바대표부 상무관을 역임했다. 산업부 국가기술표준원 제품안전정책국장으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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