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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냐 생시냐…" 역경 딛고 정상 우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기적의 스틱」김해고 하키팀>
14년만의 첫 우승은 물난리로 인한 집안걱정과 가난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견디어왔던 혹독한 훈련을 충분히 보상해줄 만큼 감격적인 것이었다.
제8회 협회장기 전국 중·고 하키대회결승전이 벌어지던 31일 성남공설운동장. 고교하키의 막강 용산고와 맞붙은 무명 김해고의 우승을 점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이러한 예측은 김해고 선수들의 불같은 투지와 정신력에 산산이 깨져 나갔다. 김해고의 2-1승리. 팀창단 14년만의 첫 전국대회 제패였다.
연간예산 1백만원에 경남일대의 유일한 남고 하키팀으로 연습상대조차 없는 김해고 선수들은 태반이 극심한 빈농출신. 이번 대회에도 경비가 없어 학교측은 출전을 포기할 정도로 애만 태우며 속수무책이었지만 학부형들이 실의에 빠진 선수들을 보다못해 조금씩 돈을 모아 간신히 여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 학교 하키 팀의 전국대회성적이라고는 83년 대구 MBC배 3위가 고작. 자신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김해고에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가 감돈 것은 모교출신에다 해병대 하키선수를 지낸 김도웅 코치(31)가 작년 부임하면서부터.
눈물 없이 못 오른다는 해발7백m의 만장대까지 10㎞의 험한 코스를 30분내에 질주하는 동계지옥훈련을 거듭하면서 선수들의 자신감과 투지가 자리잡혀 나갔다.
엄두도 못 냈던 전지훈련에 착안한 것도 이때. 잔디코트적응훈련이 가능한 부산사직야구장까지 코치와 선수가 도시락을 싸들고 김해∼부산을 매일 왕복하며 숙식비를 절감했다.
개중엔 도시락조차 싸올 형편이 못되는 선수들도 있어 라면을 끓여 도시락을 나눠먹는 어려움 속에서도 잔디코트에서 연습할 수 있다는 기쁨과 우승에의 강한 집념으로 훈련을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대회기간 중 김해평야에 2백50㎜의 폭우가 쏟아져 학교운동장이 물에 잠길 정도로 수해가 컸다는 소식을 듣고도 어느 한 선수 집안걱정을 입밖에 내는 선수는 없었다. 혹 사기가 떨어져 전력에 차질이 올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장 강한수 선수의 말이다.
우승을 차지한 뒤 숙소로 돌아와 고향집에 연락을 취한 이종진 선수는 『피해가 크다』는 집안소식에 『우승했습니더』는 단 한마디로 최대의 위로를 전했다.
부모가 안 계신데다 대회 참가 며칠 전에 하나뿐인 형님이 별세하고 수해까지 겹쳐 최악의 조건으로 대회에 임했던 유판식 선수는 이날 결승전에서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켜 승리의 수훈갑이 된 뒤 『형님과 몸을 함께 했습니더』라며 울먹였다.
가난의 설움과 수해의 불운을 딛고 강인한 투혼과 의욕으로 최선을 다한 김해고 선수들의 승전보는 근래 보기 드문 스포츠 휴먼드라마로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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