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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버리고 덜어내고… 남자의 갱년기 탈출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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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15)

갱년기에 들어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불면증, 피로감, 우울감, 안면홍조 등을 느낀다. 55세 이후에는 야간 조명이 너무 밝으면 멜라토닌 분비량이 줄어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 자신이 갱년기임을 받아들이고 생활패턴과 마음가짐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중앙포토]

갱년기에 들어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불면증, 피로감, 우울감, 안면홍조 등을 느낀다. 55세 이후에는 야간 조명이 너무 밝으면 멜라토닌 분비량이 줄어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 자신이 갱년기임을 받아들이고 생활패턴과 마음가짐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중앙포토]

“갱년기인지 잠도 푹 못 자겠고, 컨디션이 안 좋아요. 뭐라도 좀 먹어야 하나.” 회의 시작 전 옆 부서 팀장이 말을 걸었다. “뭘 먹는 게 좋아요? 나도 좀 먹게.” “어머, 팀장님도 갱년기를 느끼세요? 남자들은 좀 덜하다고 하던데. 남자의 갱년기는 어때요?”

“음,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거. 하하하. 요즘 들어 감정 조절이 더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에이, 그건 비즈니스가 어려워서 그런 것 아니에요?” 일동 웃으면서 이야기를 마쳤지만, 50대 남성의 갱년기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눈물이 나고, 무기력하고, 이유 없이 짜증 난다. 저한테 연락 주십시오.”라며 〈라디오스타〉에서 MC 김구라 씨가 갱년기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그걸 볼 때마다 좀 이른 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따져보니 내 주변 남성들이 본인의 갱년기를 끄집어내이야기하는 게 드물 뿐이었다. 호르몬의 변화가 커진 50대 남성이니 그가 갱년기를 언급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갱년기는 폐경을 중심으로 전후 10년 정도를 말한다. 50세에 폐경이 시작되면 40대 후반부터 50대 후반까지를 갱년기라고 할 수 있다. 폐경의 시기와 갱년기 증상을 느끼는 기간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난소의 기능이 저하되어 더는 가임이 가능하지 않은 때가 되면 에스트로겐 분비가 줄어든다. 이때 뇌는 난포자극호르몬을 더 많이 생성해 에스트로겐 분비를 촉진한다.

이런 호르몬의 불균형은 자율신경에 영향을 미치고 이전과는 다른 몸의 상태를 만들어 낸다. 즉, 갱년기는 난소가 여성 호르몬을 분비하지 않는 상황에 뇌와 몸이 적응하는 기간인 셈이다. 사춘기 이후 맞는 호르몬의 최대 격변기인 갱년기는 누구나 거쳐야 하는 시기다. 피로, 어깨 결림, 안면홍조, 두근거림, 어지러움 등 이 시기 느끼는 증상 역시 개인마다 다양하다.

남성 역시 나이가 들면서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하고 이로 인해 갱년기를 경험하게 된다. 남성호르몬의 감소는 성 기능 저하와 근력의 감소를 불러일으킨다. 기분을 좋게 만드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에 영향을 미쳐 짜증과 우울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여성의 갱년기는 폐경이라는 눈에 띄는 증상을 중심으로 일어나기에 어렵지 않게 본인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남성 호르몬은 30대부터 서서히 떨어져 증상 역시 완화되어 나타난다. 인식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50대 남성은 퇴직 등 사회적 변화를 앞두고 있어 경제적, 심리적 스트레스가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우울감이 심해질 수도 있다. 음주와 흡연 등의 평소 습관도 몸의 상태를 악화시킨다.

스스로 갱년기임을 자각하고 식습관 개선, 정기적인 운동 등 생활 전반을 개선해야 증상을 약화할 수 있다는 조언은 여성과 남성 모두 동일하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에게 남자의 갱년기에 관해 물었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에게 남자의 갱년기를 물었다. 동기는 퇴사한 선배들의 초라한 모습이 눈에 밟히고, 기운이 확 떨어졌다가도 화가 막 치솟는다고 했다. [사진 unsplash]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에게 남자의 갱년기를 물었다. 동기는 퇴사한 선배들의 초라한 모습이 눈에 밟히고, 기운이 확 떨어졌다가도 화가 막 치솟는다고 했다. [사진 unsplash]

“갱년기? 이전과 달라진 걸 느끼냐고? 음, 내 생각엔 남자들이 특히 달라 보일 때는 55세 이후 60세 전후인 것 같아. 사회생활을 1차 정리해야 하는 때 말이야. 회사에서 임원까지 하고 퇴직한 선배들을 가끔 만나는데, 일할 때는 그렇게 호기롭던 분들이 회사 나간 지 몇 개월 만에 기운이 확 떨어진, 약간은 초라한 모습이 되시더라고. 남자는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때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니까. 나도 얼마 안 남아서인지 자꾸 그런 선배들의 모습이 눈에 밟히더라고.”

“지금은 어떤데? 몸이나 마음의 변화나 특별한 증상은 느껴지지 않아?”
“기운이 떨어질 때 확 떨어진다는 것, 화가 날 때도 확 솟고. 하하하. 조금 더 감정적이 되는 느낌은 들어. 선배들이 이야기해주더라고. 이럴 때부터 자신 상태를 인식하고, 몸도, 마음도, 사회적 상황도 점검하고 정리하고 준비하라고 말이야.”

그러고 보니 본인의 상태를 인정하고 개선을 노력하는 지인(남성) 몇 분이 생각났다. “새로운 목표를 하나 정했는데요. 지금까지 해오던 일이나 일상 중 매년 한가지씩 버리는 거요. 이제는 보태는 삶보다 정리할 건 정리하고 중요한 것들을 남겨서 더 가꾸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선 올해는 자정 너머까지 책을 보거나 작업을 하는 일은 안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무조건 컴퓨터를 끄는 거죠. 그랬더니 다음 날 컨디션이 훨씬 좋아지더라고요.”

내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교수님께서는 '내려놓기'를 실천하고 있다고 하셨다. 덜어내며 살고, 더 중요한 것을 찾아보기로 하셨다. 일단 올해는 밤늦게까지 책을 보는 대신 밝을 때 생활하고, 일찍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사진 unsplash]

내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교수님께서는 '내려놓기'를 실천하고 있다고 하셨다. 덜어내며 살고, 더 중요한 것을 찾아보기로 하셨다. 일단 올해는 밤늦게까지 책을 보는 대신 밝을 때 생활하고, 일찍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사진 unsplash]

50대 중반이 된 교수님은 이런 식으로 하나씩 내려놓기를 실천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덜어내며 살기! 그래서 더 중요한 것 찾기! 젊은 시절 나와 다른 나를 인정한다면 이것이 최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연배의 선배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모처럼 긴 휴가를 다녀왔어요. 소백산을 오르고 절에도 들러 머물렀어요. 집에서 짐을 챙기다 오래전에 읽었던 『그리스인 조르바』 책이 눈에 띄어 가지고 갔는데, 휴가 내내 빠져들어 읽었다니까요.30대의 젊은 지식인과 자유로운 영혼의 노인 조르바가 나누는 대화 하나하나가 이제야 이해가 되더라고요. 각자의 나이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거든요. 삶을 보태가는 나이와 삶의 궤적을 이해한 나이의 두 남자. 나도 조르바처럼 산다는 것에 솔직할 수 있을까, 그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교수가 쓴 『생애의 발견-한국인은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중년 남성, 이모작의 갈림길’이라는 장이 있다. 저자는 여기서 중년 남성을 위한 전문가의 조언을 갈무리한다.

“중년이 되면 다시금 성장과 도약을 위해 결단해야 한다는 것, 그동안 외부로만 향했던 시선과 지향을 깊은 내면으로 돌리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러한 성찰과 변화를 통해 자아는 한층 고결한 차원으로 통합되고 조화로운 인격으로 완성되어 간다는 것이다.” 출세와 성취가 아닌 성찰을 통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갱년기 중년 여성인 나에게도 필요한 조언이니까!

김현주 우먼센스 편집국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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