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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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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심상복 <경제부 기자> 참 딱한 노릇이다. 중앙은행이 국민의 돈을 마치 제 돈인 양 은행들에 빌려줘 놓고는 4년이 되도록 거둬들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과거 부실기업정리과정에서 5대 시은 및 외환은행에 지원된 1조7천2백22억원에 달하는 소위 「한은특융」이 그것인데 뒤집어 말하면 이것은 시은들이 국민들로부터 그만큼의 빚을 지고 있다는 얘기와 똑같다.
더구나 그 특융의 이자는 연리3%다. 그보다 4배나 비싼 연12%의 이자를 물겠다는데도 은행돈 쓰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서민가계의 현실을 돌아보면 이만저만한 모순이 아니다.
4년전 특융이 집행될 때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요는 그같은 특혜성자금을 하루빨리 회수함으로써 국민부담을 덜어줘야 하는데, 돈을 빌러준 한은이나 그 돈을 쓰고있는 시은이나 그 같은 노력의 필요성조차 잊고있는 느낌이다.
김건 한은총재는 31일 기자간담회에서 특융회수계획을 묻는 질문에『아직 시중은행들의 수지구조가 특융을 회수해도 좋을 만큼 개선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하고 『앞으로 계속 검토해 나가겠다』는 지극히 무성의한 원칙론으로 일관했다. 특융이 나간 85년이래 굳이 총재의 발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은측의 그같은 입장은 지난 4년간 특융회수의 이야기가 거론될 때마다 마치 「조건반사」처럼 반복되던 것이었다.
그러나 시은들의 총이익 증가율은 지난해 81%에 달한데 이어 올 상반기에는 다시 1백%를 넘어섰다. 특융을 회수할 생각이 있다면 벌써 그 같은 작업에 착수하고도 남을 만한 상황인 것이다.
잘못은 재무부에도 많다. 당시의 특융이 한은을 통해 나갔지만 그 막후조정자는 재무부였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재무부는 웬일인지 마치 남의 일인 양 그때처럼 「막후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모양이다.
특융을 쓰고 있는 시은들의 태도는 더욱 문제다. 서민가계를 위한 소액대출도 좀처럼 상환기간을 연장해주지 않는 그들이, 한해 나라살림의 약10%에 달하는 국민의 돈을 쓰면서 차일피일 상환을 미루고 있는 것은 어떤 식으로라도 설득력이 없다.
한은과 재무부와 시은이 삼위일체가 돼서 빚어내고 있는 이 같은 「직무유기」는 바로 국민의 돈을 담보로 한 것임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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