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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강해이로 빚어진 한빛 1호기 사고…계산 오류·보고도 누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 뉴시스]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 뉴시스]

지난달 10일 발생한 한빛 원전 1호기 원자로 이상 출력 및 수동정지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 발전소 근무자들의 기강 해이 탓인 것으로 드러났다. 발전소 측은 사고가 발생한 ‘제어봉제어능 측정시험’ 과정에서 원자로 출력과 기동률을 살피지 않았고, 원자로가 미임계 상태인 것으로 착각한 채 반응도를 계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빛 1호기의 운영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이같은 원인을 진작 파악하고 있었지만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과방위, 한빛 1호기 사건 보고 받아 #이철희 의원, 한수원 자체 조사 문건 공개 #원자로 시동 꺼졌다고 착각 후 계산 #원자로 출력·기동률 체크는 건너 뛰어 #허가 없는 제어팀 직원이 기기 조작 #한수원 측, 원인 알고도 공개 안 해

1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철희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한빛 1호기 원자로 수동정지 원인 및 재발방지대책 보고’ 문건을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공개했다. 해당 문건은 한수원 발전처가 지난달 15일 자체 작성한 보고서로, 그동안 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 한수원에 대한 감독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달 20일 특별사법경찰관을 투입해 현재까지 사건의 정확한 원인 등을 조사 중이지만, 문건이 작성된 날짜로 볼 때 한수원 측은 사건의 원인과 기강 해이를 진작 인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11일 오후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 준비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재영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 엄재식 원안위원장,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연합뉴스]

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11일 오후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 준비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재영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 엄재식 원안위원장,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연합뉴스]

문건에 따르면 당시 제어봉 인출 전 반응도를 계산한 근무조는 원자로의 시동이 사실상 꺼진 것으로 착각했다. 제어봉을 인출하면 원자로 출력이 증가하기 때문에 원자로 반응을 사전에 계산해야 한다. 해당 작업은 난이도가 높지 않아 당시 계산 실수는 상식 밖의 일로 지적됐다. 그러나 당시 계산을 수행한 근무조는 상황 자체를 잘못 인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제어봉을 실제 인출하는 과정에서도 원자로 출력과 기동률을 살피지 않은 오류를 범했다. 또 규정에 따르면 설비 이상이 발생했을 때 점검을 위해 통지 및 작업 오더를 발행해야 하지만, 이 과정을 건너뛴 채 제어봉 위치 편차 교정을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발전소 기기는 근무조 운전원이 조작해야 하지만 권한이 없는 시계측제어팀 직원이 조작한 것도 문건에 적시됐다.

지난달 10일 사고가 발생한 한빛 원전 1호기. [연합뉴스]

지난달 10일 사고가 발생한 한빛 원전 1호기. [연합뉴스]

이날 출석한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이에 대해 “(해당 직원은 권한이 없지만) 운전원인 발전소 차장과 발전팀장 등의 지시를 받아 조작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문건을 근거로 “무면허 운전을 한 직원이 지시를 받은 바 없다고 최초 진술했는데 한수원 측이 말을 바꿨다”고 질타했다.

한편 이날 과방위에서는 주제어실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위한 CCTV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정 사장은 이에 대해 “CCTV 설치가 검토된 바 있지만, 개인정보보호법 등 기타 이유로 노동조합이 반대하고 있어 무산됐다”고 밝혔다.

과방위 소속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은 이 자리에서 “관련 법인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에 따르면 원자력 시설물의 물리적 방어에 관한 사항은 총리령으로 정할 수 있다”며 “주 제어실은 사생활 영역이 아닌 만큼 CCTV 설치에 관한 사항을 못 박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과방위에서 한빛 1호기 원자로 수동정지 원인 및 재발방지대책 보고’ 문건을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공개했다. [사진 임현동 기자]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과방위에서 한빛 1호기 원자로 수동정지 원인 및 재발방지대책 보고’ 문건을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공개했다. [사진 임현동 기자]

원자력 열출력이 기준치를 크게 초과한 18%까지 오른 후에도 곧바로 수동정지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한수원 측의 보고 누락이 지적됐다. 엄재식 원안위원장은 “운영기술지침서에는 (열 출력이) 5%가 남으면 수동으로 정지해야 한다”며 “그러나 한수원 측은 보조 배수펌프의 문제라고만 보고를 했고 이에 따라 조사를 나갔다가 (그제야) 18.2%의 열출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열출력 수치는 제어 상황판과 주전산기에 즉각 기록되기 때문에 운전원 등 담당자가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상황은 생각하기 어렵다는 게 엄 위원장의 말이다.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은 과방위에는 직접 참석하지 않았지만 ‘한빛1호기 수동정지’ 중간 점검 결과 자료를 통해 원안위 규정의 미비점을 지적했다. ‘원자력이용시설의 사고·고장 발생 시 보고·공개 규정’에 따르면 이번 한빛 1호기에서 발생한 것처럼 ‘열출력 초과’ 자체에 대한 보고 규정이 없다는 것이 골자다.

한편 이날 과방위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소속 위원들이 일부 빠진 상태로 개의해 ‘반쪽 회의’에 그쳤다. 불참한 의원들은 전체회의 일정을 사전에 합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불참 사유로 들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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