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입금 어디 썼나, 자회사 합병해라…기관들도 행동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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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 5일 오후 2시30분쯤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주가가 갑자기 오르기 시작했다. 3대 주주(지분 7.59% 보유)인 KB자산운용이 자회사 합병과 배당을 요청하는 주주서한을 발송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날 SM 주가는 전날보다 4.01% 오른 4만535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한진칼에 소송 제기한 KCGI #SM엔터 조준한 KB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도 CJ 관여 #국민연금처럼 주주권 챙기기

KB자산운용은 이날 주주서한에서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지분 100%를 보유한 라이크 기획과 SM을 합병하고 순이익의 30%를 배당하라고 요구했다. KB자산운용은 “라이크 기획이 SM과 계약을 맺고 지난 5년 동안 영업이익의 46%를 자문료(음악 자문 등)로 받아왔다”며 “이 프로듀서의 개인 회사 라이크기획이 SM에서 수취하는 인세는 소액주주의 이해와 상충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신규 사외이사후보를 추천해 이사회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SM엔터 주요 주주

SM엔터 주요 주주

지난달 29일 3만7650원이었던 SM 주가가 이달 초 4만원대 중반까지 오른 것도 KB자산운용과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 주주서한을 발송할 것이란 소문이 시장에 퍼지면서였다. 자회사 합병이 이뤄지면 배당 여력이 커질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돼서다. SM은 2000년 합병 이후 단 한번도 배당하지 않았다.

주주 권한을 챙기려는 기관투자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요구 사항도 다양해지고 있다. 회사의 차입금 사용내역을 공개하라는 요구부터 자회사 합병과 유휴자산 매각 등까지 관여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 지침)를 배경으로 한 기관투자가들의 주주관여 활동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가장 공격적으로 나선 곳이 한진그룹의 지주사 한진칼 2대 주주(지난달 기준 지분 15.98% 보유)인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다. 한진칼은 KCGI 산하 투자목적회사 그레이스홀딩스가 지난달 29일 자사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고 지난 5일 공시했다.

한진칼이 이사회를 거쳐 결의한 단기차입금 1600억원의 사용내역을 열람하고 등사하게 해달라는 것이 KCGI의 요청 사항이다. 그뿐만 아니다. KCGI는 지난달 29일 한진칼을 상대로 고(故) 조양호 회장의 퇴직금과 관련한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도 최근 CJ제일제당에 주주 서신을 발송했다. 미국 냉동식품 기업 쉬안즈를 인수하면서 인수대금 대부분을 차입으로 조달한 것을 문제 삼았다. 차입금 비율 축소를 위한 보유 유휴자산 매각 계획을 알려달라는 요구도 덧붙였다.

기관투자자의 주주관여 활동은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그동안 기관투자가들이 ‘경영권 침해’라는 비판을 의식해 주주활동을 망설였지만 관련 제도나 법률 정비,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관여 활동 등을 경험하며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적 연기금에 대해 ‘5%룰’ 완화를 추진하는 것 등이 이러한 변화다.

기관투자자의 주주 관여 활동에 대한 인식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에 이어 자산운용사들이 스튜어드십 코드 활동을 강화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주주관여 활동이 지금보다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며 “현대차그룹에 대한 엘리엇의 무리한 주주제안이 주주총회에서 무산된 것 등을 보면 한국 자본시장이 주주관여 활동의 옥석을 가려낼 만큼 성숙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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