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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중년, 자식 걱정할 것 없이 “나만 잘 하면 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32)

아내와 전주로 이사 온 지 두 달째다. 지인들이나 조금씩 안면을 튼 이웃들은 우리 부부에게 ‘아이들’에 대해 조심스레 묻는데, 아이들은 서울에 있고 우리만 이곳에서 산다고 하면 의아해한다. “누가 봐줘요?” “봐주긴요. 자기들끼리 밥해 먹고 사는 거죠. 대학생들이에요.”

아이들에게는 진작부터 20세 되면 독립해야 한다고 말해왔고 그들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물론 학교 졸업하고 일자리 얻을 때까지 경제적으로는 내가 지원해야 하지만 적어도 생활이나 정서적인 독립은 필요하다고 보았다.

키도 크고 힘도 센, 세상의 대세가 뭔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요즘 아이들, 부모 눈에는 어리게만 보이겠지만 사회적으로는 늙어가는 아빠, 엄마보다 훨씬 강자다. [사진 박헌정]

키도 크고 힘도 센, 세상의 대세가 뭔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요즘 아이들, 부모 눈에는 어리게만 보이겠지만 사회적으로는 늙어가는 아빠, 엄마보다 훨씬 강자다. [사진 박헌정]

그리고 퇴직 후 집에 들어앉아 있으면서 어른 네 명이 복닥거리며 함께 산다는 게 ‘가족 간의 사랑과 화목’이라는 대표 이미지 이면에 현실적인 피로감도 있음을 느꼈다. 서로 간의 기준과 패턴이 맞지 않아서 그렇다. 해결책은 따로 사는 것, 잘 됐다. 이 기회에 진작부터 생각하던 지방 생활을 시작하자!

더러는 우리에게 아이들 걱정 안 되냐고, 보고 싶지 않냐고 묻는다. 부모가 어찌 자식 걱정 없고, 보고 싶지 않겠는가. 할 것 다 해놓고도 돌아서서 생각하면 늘 가슴 미어지는 게 부모 마음인데. 그런데 그것은 ‘작은’ 감정이다. 그 작은 감정이 중년 부모들의 발목을 잡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제 은퇴는 인생 중간단계의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이 중년 시기에는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직장에서의 경쟁, 노화, 갱년기, 사춘기 자녀, 부모님 치매… 피로감이 급상승한다. 이러다간 은퇴 후에 ‘자아’를 챙길 겨를도 없이 상실감 느끼며 우울한 노년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문제로 고민하지 않고 ‘내가 더 급하다’는 전제하에 나의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원래 인정머리 없는 성격인지, 아예 아이들 미래에 대한 고민의 총량을 정해놓았다. 입시 뒷바라지, 취업, 결혼, 집 장만, 손자 양육까지, 평생 자식의 매니저 역할만 하거나, 늘 달달 거리고 쫓아다니며 ‘사랑한다, 너뿐이다, 이번 주에 안 올래?’ 하며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든지 자기 세상이 있다. 아이들은 자기 관점과 기준으로 그들의 세상을 헤쳐나간다. 부모의 눈에는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들의 미래에 대해선 그들의 판단을 믿어야 한다. [사진 박헌정]

누구든지 자기 세상이 있다. 아이들은 자기 관점과 기준으로 그들의 세상을 헤쳐나간다. 부모의 눈에는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들의 미래에 대해선 그들의 판단을 믿어야 한다. [사진 박헌정]

차라리 나의 노년을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도록 잘 대비해서 자식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끼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 부모는 아이들 밥해주느라 해외여행 못 가고, 나중에 자식들은 외로움에 시달리는 부모한테 미안해 해외여행 못 가는 게 부모·자식 간의 사랑이고 효도일까. 서로 의존하고 구속하는 굴레에 빠지는 것 같다.

그러니 어쩌면 각개전투, 즉 “나만 잘하면 돼!”가 때로는 답이 된다. 특히 커나가는 아이를 믿어야 내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자식은 부모가 보는 것보다 훨씬 성숙하다. 키 크고 힘도 세고 인터넷 세상의 흐름과 앞으로의 대세가 뭔지 잘 알고 있다. 아직 돈만 없을 뿐이지 사회적으로는 늙어가는 아빠, 엄마보다 훨씬 강자다.

다 큰 아이한테 짜장면을 비벼주는 부모의 정성 때문에 아이는 계속 아이로 머문다. 그게 아이에 대한 사랑일까 지배일까. 몇 년 후 아이 잘 부탁한다고 회사 인사부장 찾아가고, 결혼시키면 우렁각시처럼 부부가 자식 집 비밀번호 알아내서 냉장고에 열무김치 채우고 청소하러 다니지 않을까.

조바심 때문에 내 가치관대로 통제하고 싶더라도 아이가 첫걸음마 뗄 때처럼 세상 위험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성장할 것이라 믿고 기다려야 한다. 만일 실수하더라도, 시행착오 역시 그들의 재산이다.

가족이라 하면 하나의 영역과 질서만 생각하지만 그 안에는 가족의 행복을 위한 공통부분도 있고 각 구성원의 세계도 있다. 자기의 세계는 자기 것으로 채워야 하지 않을까. [사진 pixabay]

가족이라 하면 하나의 영역과 질서만 생각하지만 그 안에는 가족의 행복을 위한 공통부분도 있고 각 구성원의 세계도 있다. 자기의 세계는 자기 것으로 채워야 하지 않을까. [사진 pixabay]

엊그제 서울에 올라갔다가 아이들 집에 들렀다. ‘집안 꼴’이 내 기준에는 미달하지만 잔소리하지 않았다. 그들의 공간에서 내가 할 말이 없다. 함께 살 때는 아이가 다이어트 한다고 굶어도 걱정, 치킨을 많이 먹어도 걱정이었다. 늦게 들어오면 위험하다고 걱정, 수업 끝나자마자 들어오면 사회성 없는 것 아닌가 걱정했다. 지금은 밥을 먹고 다니는지 굶고 다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짱한 모습을 보니 아무 문제도 없는 것 같다. 역시 안 듣고 안 보아야 걱정이 없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해댔던 수많은 잔소리는 사실 나의 조급증 때문이었다. 영어 공부해라, 이제 중국어의 시대다, 조정래의 ‘한강’을 읽어보면 윗세대들을 이해하게 될 거다… 당연히 아이로서는 피곤할 만하다. 밤새 게임을 하든, 학점이 어떻든, 나중에 어떤 곳에서 얼마만큼의 돈을 벌며 살든, 전부 내 손을 떠난 문제다. ‘그래,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해야지’, 부모로서는 그저 아이의 행복에 방점을 찍고 싶다.

전주로 이사하기 전날이 마침 큰아이 생일이라 각별한 의미를 둔 외식을 했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너희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잔소리한 것은 너희가 아직 성장 과정이고 아빠 엄마의 책임과 영향권 안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최근 들어 잔소리 많이 줄었지? 너희 생활이 아빠 엄마의 바람과 다른 게 있어도 그건 덜 성숙한 게 아니라 이제 서로 스타일이 다른 사람으로 성장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다들 자식 인생 살지 말고 내 인생을 살자고 한다. 그런데 ‘생각 따로, 몸 따로’다. 그래서 우리는 일찌감치 세대(世代)를 분리했다. 갓 스물 넘은 아이들을 떼어놓고 어떻게 둘만 지방으로 내려가 사냐는 질문에 대답이 좀 될까?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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