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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싸움쟁이 한인 수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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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한인수녀님들 덕분에 우리가 어깨 좀 펴고 삽니다!"

주 멕시코 한국 대사관이 최근 청와대 국정브리핑에 올린 글이다. 어떤 사연이기에 멀리 멕시코 한인 사회에서 이런 반응이 나올까.

정작 그 주인공인 마리아 수녀회 찰코 분원장 정말지(43.사진) 수녀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하느님을 보고, 그들에게 나 안에 계신 하느님을 보여 주기 위해 정성을 다 하는 것일 뿐"이라며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했다.

새내기 수녀였던 27세의 정말지 원장이 멕시코에 처음 온 것은 1990년. 마리아 수녀회 설립자인 고(故) 알로이시오 신부와 함께 91년 멕시코시티 부근의 소도시 찰코에 무료 기숙학교인 '소녀의 집'을 세웠다. 정 원장 등 수녀들의 열성 덕분에 현재 중.고교 과정의 빈곤층 여학생 4000여 명을 교육하는 사회복지 교육기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정규 교육과정을 비롯해 문화.스포츠.컴퓨터 등 취업 교육도 하고 있다.

지난 3월 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 내외가 소녀의 집을 방문했다. 이에 앞서 2월에도 대통령 부인 마르타 사아군 폭스 여사가 학생들이 준비한 패션쇼를 보러 이곳을 찾기도 했다. 마르타 사아군 폭스 여사는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멕시코 불우학생들을 한인 수녀들이 가르치고, 먹이고, 보살펴 주고 있다"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정 원장을 '마드레 보니타'(예쁜 엄마)로 부르지만 '펠레오네라'(싸움쟁이)라는 험한(?) 별명도 있다. 몇년 전 토지세를 지나치게 많이 부과한 시청을 찾아가 세금 면제를 요구하며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얻은 별명이다. 그는 "4000명의 아이들을 매일매일 지키고 입히고 가르치려면 치열해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최근 시화집 '찰코의 붉은 지붕'을 냈다. 그는 "후원자들에게 세상에서 하나 뿐인 선물을 전하기 위해 유화를 그리게 됐다"고 했다. 2000년부터 소녀의 집을 돕고 있는 LG전자에 대해선 "도와주는 방법을 제대로 아는 기업"이라며 고마워했다. 소녀의 집 학생 120여 명은 지난해 9월 LG전자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청와대 등을 돌며 공연하고, 한국 문화를 체험하기도 했다.

정 원장은 한국인들은 "어느 집을 가든지 뭘 싸들고 가는, 정 많은 민족"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당부를 했다.

"이제는 세상을 한 가족으로 바라보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넓은 자선을 행했으면 합니다. 종교가 달라서, 고향이 달라서, 피부색이 달라서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아직도 좁게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불우한 아이 한 명을 도우면 그만큼 세상은 밝아집니다. 지금 당장 그 열매가 보이지는 않겠지만, 누군가는 그래도 씨앗을 뿌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의 개인 블로그 인사말에는 '정성껏 살기, 지금 여기에서 ̄'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멕시코시티=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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