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학공업 기틀 마련 오원철 전 경제수석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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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철 전 경제수석이 2015년 중앙선데이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중앙포토]

오원철 전 경제수석이 2015년 중앙선데이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중앙포토]

 ‘한국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의 효시’ 오원철 전 청와대 제2경제수석비서관이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1세.

오 수석은 1960~70년대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을 담당하며 산업화를 이끌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를 가리켜 ‘오 국보’라고 불렀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황해도 출신인 그는 경성공업전문학교 화학공업과(서울대 화공과 전신)를 졸업하고 공군 소령으로 예편했다. 시발자동차 공장장을 지내다가 1961년 5·16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조사과장을 맡으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상공부 화학과장으로 공직에 입문, 상공부 공업1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보를 거쳐 1971년 청와대 제2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됐다.

1974년 정부의 중화학공업화 정책 선언에 맞춰 중화학공업 기획단장을 겸임했다. 창원을 비롯해 울산·온산·구미·여수 등 전국 산업기지 조성을 지휘했다.

1973년 오일쇼크 때는 중동진출을 기획했다. 1970년대 후반 박 전 대통령 지시로 진행된 핵연료 국산화사업의 책임자로도 지목된다.

1978년 9월 옥천 처가를 찾은 박정희 대통령을 수행한 오원철 경제수석이 막걸리를 따르고 있다. 박 대통령 옆은 딸 근영 씨, 서 있는 이는 최광수 의전수석. [중앙포토]

1978년 9월 옥천 처가를 찾은 박정희 대통령을 수행한 오원철 경제수석이 막걸리를 따르고 있다. 박 대통령 옆은 딸 근영 씨, 서 있는 이는 최광수 의전수석. [중앙포토]

1980년 신군부 쿠데타로 물러난 뒤 12년간 대외활동을 하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 기아경제연구소 상임고문, 한국형 경제정책연구소 고문을 지냈다.

그는 『한국형 경제건설』과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 책을 펴냈다. 생전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어렵다”며 ‘기술 강국’만이 살 길임을 강조했다.

빈소는 서울성모장례식장, 발인은 6월 1일 오전 7시30분이다. 장지는 경기도 가평군 선영. 유족으로는 아들 오범규 명지대 교수와 딸 오인경 전 포스코 상무가 있다. 02-2258-5940.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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