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판문점귀환」 강행엔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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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대협대표로 평양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 양의 귀환일(27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는 임양의 귀환문제를 놓고 여러가지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일단 북한이 선전효과만 노리고 임양을 강제로 판문점을 통해 보내지는 않을 가능성을 제일 높게 점치고 있다. 이는 그 동안 북한측이 저질러온 관례와 군사정전협정상의 규정으로 볼 때 쉽게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북한은 지난 53년7월 휴전협정 체결이후 비무장지대에서의 총격과 어선납치 등 휴전협정 위반을 수없이 범해왔다.
그때마다 북한은 거꾸로 남한쪽이 먼저 협정을 위반했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상투적인 수법을 구사해왔다. 그러나 임양의 판문점통과 문제는 북한측이 고의로 휴전협정을 위반한 것이 명백해진다.
휴전협정 제1조7항은 「군사정전위의 특정한 허가 없이는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이나 군사분계선을 통과함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정전위의 양 당사자인 유엔사와 북한간의 합의 없이는 어떤 사람도 판문점을 통과할 수 없게 되어있다.
따라서 유엔사가 25일 불허방침을 북한측에 공식 통보함으로써 임양을 강제로 보내면 휴전협정위반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돌아간다.
정부가 임양의 판문점 통과를 실현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보는 또 다른 이유는 이번에 휴전협정위반 선례를 만들 경우 그것은 곧 북한쪽에 부담으로 되돌아갈 것이 명백하다는 점이다.
지난66년 북경주재 스웨덴대사가 판문점을 넘어 평양을 거쳐 북경으로 귀임 하겠다고 요청한 것을 시작으로 북한은 끊임없이 우리측 지역에서 판문점을 통과, 북한으로 가겠다는 요청을 거부해왔다. 그래놓고 이번에 스스로 협정을 위반해 판문점을 통과하는 선례를 만들어 놓으면 우리측에 곧 역공당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가령 남쪽에서 골치아파하고 북쪽에서도 환영하지 않는 인사를 거꾸로 우리가 판문점에 내동댕이(?)쳤을 때 북한이 겪을 고통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의 통과강행 의지가 확고하다면 굳이 이홍구 통일원장관과 김상협 대한적십자사총재, 유엔사 등에 허가요청 서한을 보낼 필요가 없다. 절차를 밟는다는 자체가 선전효과를 노리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 우리측 관계자들의 얘기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우리측 불허방침을 이용, 남한에 통일의지가 없다고 대내외적으로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익환 목사 때 이 같은 북한의 의도가 드러난바 있다.
그러나 임양의 경우 문익환 목사 때와는 달리 ▲나이 어린 여대생이며 ▲국제적으로 주목받던 평양축전이 끝난 직후라는 점 등을 고려, 판문점 통과를 강행할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만은 없다는 주장도 정부내에는 있다.
임양이 통과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관할권은 휴전협정 당사자인 유엔군과 북한군에 속한다.
휴전협정을 위반하고 넘어왔을 때 유엔사는 임양을 되돌려보내거나 군사정전위를 열어 북한측에 위반사례를 적시, 강력 항의할 수 있지만 위반자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어 임양을 직접 체포, 처벌할 수는 없다.
더구나 미군측은 자신들이 임양을 체포, 한국측에 넘겨줄 경우 「남조선은 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주한미군은 남북통일을 저해하는 장애물」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을 우려, 「악역」을 맡지 않으려 하고있어 임양이 오더라도 미군에 의한 체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임양이 판문점을 넘어오면 한국인 카투사병력이 인도, 남방한계선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리측 공안관계자들에게 인계하는 형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임양은 그러나 북한의 설득에 의해 판문점을 통과하지 않고 귀국 길에 일본에 들러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등의 방법으로 대대적인 선전전을 펼치는 것이 북한의 각본일 것이라고 정부관계자들은 보고있다.
임양이 제3국으로 올 경우 귀환시기는 다소 늦어질 가능성이 있으며 북한이 평양에 잔류시키지 않는 한 황석영 씨처럼 해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할 수도 없는 처지다. <김두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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