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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직장 얻고 장가도 가요”…‘남의 팔 가진 사나이’ 인생 3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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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손진욱씨가 장가를 간다. 멋진 포즈를 취하고 찍은 그의 웨딩사진. 배우자 사진은 원하지 않아 공개하지 않았다. [사진 손진욱씨]

손진욱씨가 장가를 간다. 멋진 포즈를 취하고 찍은 그의 웨딩사진. 배우자 사진은 원하지 않아 공개하지 않았다. [사진 손진욱씨]

“6월 제 두 번째 새 인생이 시작됩니다.”

국내 첫 ‘팔 이식’ 받은 손진욱씨 #6월에 새 직장 출근, 결혼 겹경사 #공장서 사고 … 뇌사자 팔 기증받아 #“이젠 스마트폰 자판도 두드려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남의 팔’을 이식받은 손진욱(38·사진)씨가 다음 달 결혼한다. 지난해 가을 소개로 만나 교제해 온 여자친구와 대구에서 부부의 연을 맺는다. 손씨는 “팔 이식 수술을 받은 2년 전 2월이 제게 첫 번째 새 인생을 시작한 달이라면 6월은 두 번째 새 인생을 시작하는 달이 되는 셈”이라며 기뻐했다.

그는 2015년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왼쪽 팔을 잃었다. 의수(義手)를 끼고 생활하다 2017년 2월 2일 대구 W병원과 영남대병원 의사에게서 뼈와 신경·근육·혈관 등이 포함된 다른 사람 팔을 이식받았다. 왼쪽 팔의 손목 위 약 10㎝ 부위부터 손과 손가락 끝까지 뇌사자 팔을 기증받은 덕분이다.

6월이 그에게 특별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대구시 등 주변의 도움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경북 칠곡군 한 사회협동조합에서 새로 일하게 된 것이다. “한쪽 팔 없이 지낸 경험이 있어 장애의 고통을 잘 안다. 단순히 ‘남의 팔을 가진 사나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보다는 신체 장애를 가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회 복지 관련 기관에서 일하고 싶다”던 그의 바람이 이뤄진 것이다. 팔 이식 수술 뒤 여자친구가 생겨 결혼하고, 소망하던 직장까지 얻는 경사가 겹친 것이다.

손진욱씨가 이식 받은 자신의 왼쪽 팔을 오른쪽 팔과 비교해 보여주고 있다. [김윤호 기자]

손진욱씨가 이식 받은 자신의 왼쪽 팔을 오른쪽 팔과 비교해 보여주고 있다. [김윤호 기자]

수술한 팔은 정상인의 팔에 가까워지고 있다. 손씨는 “수술 2년이 지나면서 ‘남의 팔’이 이젠 내 팔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수술 초기에는 팔과 손이 저리고 시려지는 고통을 겪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리는 것 같은 정교한 움직임은 엄두도 내지 못냈다. “왼쪽 팔이 달렸지만, 내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수술 몇 달이 지나면서 그의 몸은 조금씩 남의 팔을 받아들였다. 5개 손가락 모두 움직일 수 있게 되고 손에 힘을 줄 수 있었다. 야구공을 쥐고 던지거나 다른 사람과 악수도 할 수 있었다. 신경이 살아나면서 뜨거움과 차가움을 느끼고, 차량 운전과 양치질, 머리 감기 같은 일상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 손에는 땀도 났다. 덕분에 2017년 7월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 때는 시구를 했다. 비록 공을 힘있게 멀리 던지진 못했지만, 시구는 팔 이식 수술의 성공 사례로 화제가 됐다.

지금은 정상인의 80%까지 손과 팔에 힘을 낼 수 있다 한다. 그래서 그는 요즘 헬스에 푹 빠져 있다고 귀띔했다. 손씨는 “최근에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자판을 자유롭게 두드리고 숟가락으로 식사까지 한다”고 자랑했다.

손씨 사례를 계기로 팔 이식 수술의 위법 논란도 정리됐다. 보건복지부가 수부(손·팔)를 ‘장기이식법’ 관리대상에 넣기로 법 개정을 추진한 결과 지난해 성사된 때문이다. 팔 이식 후 치료를 위해 매월 처방받아 먹는 면역 억제제는 의료보험 적용 대상이 됐다. 그는 지난해 중순까지 면역 억제제를 먹는 데 월 100여만원을 부담했으나 의료보험 적용으로 월 17만원 정도만 낸다. 손씨는 “팔을 기증해준 기증자를 위해서라도 이웃을 챙기며 더 열심히 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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