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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공제 있으나 마나...독일 기업 2만개 혜택 보는데 한국은 200개

중앙일보

입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오른쪽)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상속세제 개선 토론회'에서 이성봉 서울여대 교수의 주제발표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오른쪽)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상속세제 개선 토론회'에서 이성봉 서울여대 교수의 주제발표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상속세 제도는 실효세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공제제도를 이용하기 위한 조건이 까다로워 기업 상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기업가 의지를 높이기 위해 가업상속공제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총은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상속세제 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현행 상속세 과세방식은 5단계로 이루어진 과세표준 구간을 따른다. 최고세율이 부과되는 5단계는 상속액이 3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로, 초과 금액의 50%를 부담하게 돼 있다. 한국의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50%)은 독일(50%), 미국(40%)보다 높다. 상속세 전체 평균 실효세율도 한국은 28.09%로, 일본(12.95%), 독일(21.58%), 미국(23.86%) 등 선진국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가업 상속을 돕기 위한 가업상속공제제도도 마련돼 있지만 까다로운 조건이 오히려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이용할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성봉 서울여대 교수는 "기업 현장에서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설명하면 중소·중견기업 사주 대부분이 가업상속공제제도 이용을 포기한다"고 설명했다.

가업상속공제 요건에서 이 교수가 문제 삼는 것은 사후관리 부분이다. 상속 직후 10년 이내에 ▲상속인이 해당 기업에 종사하지 않거나 ▲가업용 자산의 20% 이상을 처분하거나 ▲정규직 근로자 수 평균이 기준고용인원 100%에 미달할 경우 공제받은 상속공제금액에서 상속세를 추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속세 과세구간. [중앙포토]

상속세 과세구간. [중앙포토]

이 교수는 "2014~2017년 독일의 기업승계공제 이용 건수와 금액은 2만 2842건에 575억 유로(약 76조 5000억원)이 이른다"며 "같은 기간 한국의 가업상속공제 이용 건수와 금액은 197건, 3790억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가업상속공제제도 이용 건수와 총액은 독일보다 각각 1%, 0.5%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정구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은 "상속받은 주식을 모두 팔아도 상속세를 마련할 수 없어 결국 파산에 이른 회사도 있을 지경"이라며 "창업주 2세에 기업을 물려주는 행위는 나쁜 것이라는 사회의 낡은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속공제 완화가 대기업에까지 확대돼 기업 상속 특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가업상속공제는 매출액 3000억원 미만 기업에 적용되는 제도로 대기업과는 상관없다는 게 경총의 입장이다. 임영태 경총 경제조사팀장은 "상속공제 문턱을 낮춰 지금보다 더 많은 기업인이 혜택을 받도록 하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면서도 '꼼수' 없는 합법적 상속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론도 만만찮다. 이미 대다수의 기업이 가업상속공제제도 범위 안에 포함된 상황에서 이를 완화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다.

정세은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센터장은 "가업상속공제제도 조건이 까다롭긴 하지만 국내 기업 중 96%는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며 "상속을 못 하는 상황이라면 M&A 시장에 나가는 방법도 있는 만큼 기업이 지속될 방법은 많다. 창업주의 2세에게만 기업을 물려줘야 한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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