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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속도조절?···3%만 올려도 文정부서 33% 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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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내년 최저임금 결정 시 경제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 경제 주체의 부담 능력, 시장에서의 수용성 등 3가지를 논의 과정에서 함께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내년 최저임금 결정 시 경제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 경제 주체의 부담 능력, 시장에서의 수용성 등 3가지를 논의 과정에서 함께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정부는 지난 24일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을 새로 위촉했다. 비교적 중립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인사라는 평가다. '최저임금 속도조절'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 붙었다. 공교롭게 그즈음 청와대에서 3~4% 인상설이 흘러나왔다.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다"고 했지만,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도 "경제 사정을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다. 낭설로 흘리기엔 여러 정황이 속도조절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3% 정도 올리면 속도조절로 시장이 받아들일까?

"탁구공 크기 3%와 농구공 3%는 달라"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탁구공의 3%와 농구공의 3%는 다르다"며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단순히 인상률을 놓고 논할 시점이 아니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이미 많이 오른 상태에서 또 올리면 그 무게를 시장이 견딜 수 있는지를 봐야 하고, 그 충격의 정도를 속도조절의 판단 잣대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내년 최저임금을 3%만 인상한다고 쳐도 명목 시급은 8601원이 된다. 올해보다 251원 오른다. 주휴수당을 포함한 실질 시급은 1만331원으로 올해(시간당 1만30원)보다 300원 인상된다.

3% 올리면 명목 시급 8601원, 실질 시급 1만331원

정부가 주휴수당을 포함해 공표하는 최저 월급은 179만7609원으로, 올해(174만5150원)보다 5만2459원 인상된다. 이 액수가 기본급인 점을 감안하면 이를 기준으로 책정되는 각종 수당까지 더할 경우 인건비는 크게 불어난다.

내년 최저임금을 지금보다 3%만 올려도 2017년 대비 32.9% 오르는 셈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1일 최저임금의 영향에 대한 고용시장 실태조사를 통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탓에 고용이 감소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부의 첫 공식 영향 평가다.

최저임금 공익위원을 역임한 모 대학 경영학 교수는 "현 정부 2년 동안 29%나 올렸다가 고용시장이 큰 타격을 입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3년 차에 33%로 불리면 고용시장이 견딜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그런 면에서 속도조절이라고 평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내년 적정 최저임금에 대한 국민여론 조사 결과. [사진 리얼미터]

내년 적정 최저임금에 대한 국민여론 조사 결과. [사진 리얼미터]

실질 시급 1만원 대 유지하는 선에서 인하론도

이 때문에 경영계에서는 내년 최저임금 마이너스 인상론도 나온다. '주휴수당을 포함해 1원만원 대인 시급 8330원으로 낮추자'는 구체적인 액수도 거론된다. 올해보다 20원(-0.2%) 인하하자는 얘기다. 명목 시급이 8330원이면 주휴수당을 포함할 경우 시급은 1만6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깨지 않는 범위에서 상징성을 강조하는 셈이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마이너스론은 실제로는 최저임금을 낮추지 않으면서 고용시장에 신호를 주는 상징적 의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1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회원들이 최저임금 개악 피해사례 고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21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회원들이 최저임금 개악 피해사례 고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반면 노동계는 올해도 명목 시급 1만원을 고수하고 있다. 주휴수당을 포함한 실질 시급은 1만2012원이다.

"최저임금 동결만큼 긍정적 신호 없어"

성태윤 교수는 "경제는 신호다. 우리 경제에 대해 정부가 내년 최저임금 동결 입장을 표명하는 것만큼 확실한 신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1988년 활동을 시작한 이래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하향조정한 적은 한 번도 없다. 1998년 9월~1999년 8월까지 적용된 최저임금을 전년보다 2.7% 인상한 것이 가장 낮은 인상률이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이런 경향에다 소득주도성장을 철학적 목표로 삼고 경제를 다루는 현 정부의 성향, 총선을 앞둔 점 등을 고려할 때 내년에도 일정 수준의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동결 안 되면 가능한 업종 몇 개만 인상"

성 교수는 "동결이 정 어려우면 인상이 가능한 몇 개 업종만 올리고 나머지를 동결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업종별 차등 적용은 현행 최저임금법에 따라 시행할 수 있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최저임금 심의를 매년 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며 "임금이 3% 오르는 동안 매년 10% 이상 올린 상황에서 꼭 양(+)의 인상을 고집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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