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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승차공유’ 침묵, IT 전문가 드물고 20만 택시표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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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최종구(左), 이재웅(右)

최종구(左), 이재웅(右)

지난주 내내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벤처 기업인 이재웅 쏘카 대표의 날 선 발언이 화제였다. 15일 차량공유 서비스 ‘타다’에 반대하는 70대 택시 기사의 분신으로 촉발된 언쟁의 흐름은 이랬다.

최종구·이재웅 논쟁에 논평 없어 #혁신 외치지만 포용에 무게 둬 #타다 회원수 60만 명 넘었지만 #택시 노조 조직력 강해 눈치보기

“죽음을 정치화하고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17일, 이 대표) → “(이 대표의 발언이) 이기적이고 무례하다”(22일, 최 위원장) → “갑자기 이분은 왜? 출마하시려나?”(22일, 이 대표) → “혁신사업자들도 사회적 연대를 중시해야 한다”(23일, 최 위원장) → “혁신에 승자와 패자는 없다. 사회 전체가 승자가 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있을 뿐이다.”(23일, 이 대표)

표현은 다소 거칠었지만 관전자들로 하여금 ‘혁신과 포용의 딜레마’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4차 혁명의 시대, 분야를 막론하고 신규 사업자와 기존 사업자 간의 갈등이 계속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언쟁이 한풀 꺾인 26일 이 대표는 “이 문제를 깊게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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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유독 조용한 곳이 있다. 바로 정치권이다. 특히 논의의 한 축이 돼야할 집권 여당은 그 흔한 논평 한 줄 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카카오 카풀이 한창 문제가 됐을 때 어렵사리 협의를 이뤘지만 이후 논의 과정에서 택시 사업자와 야당이 반대해 진도가 안 나가고 있다. 여당에만 책임을 돌려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업계와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①철학 때문?=문재인 정부는 ‘혁신적 포용’을 경제정책의 기치로 내걸고 있다. 대선 때 제시한 4대 비전 중 하나였던 ‘더불어 성장으로 함께하는 대한민국’을 통해 “스마트 코리아 구현을 위한 민관 협업체계를 구축하겠다” “혁신 창업 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차관급 부서이던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확대 신설했고, 김동연 초대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8월 혁신성장본부 민간 본부장에 이재웅 대표를 앉히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는 없고, 되레 현장과 여권의 간극만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 대표도 본부장 취임 5개월 만에 “공유 경제가 아무런 진척을 보이지 않는다”며 사퇴했다. 혁신 산업 현장에선 “혁신이라는 게 돌출적인데, 여기저기 잘 보이려고만 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임주환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장은 “이 사람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좋은 소리만 해서는 아무런 성과를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벤처업계의 한 원로 인사는 “문 대통령과도 얘기해 보면 혁신에 대한 의지가 있다. 그렇지만 혁신과 포용 중에 뭐가 더 우선이냐는 문제에 직면하면 혁신이 밀린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말했다.

②경험의 문제?=“여권 전반에 혁신 산업을 이해하는 인물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민주당에선 게임 업체 웹젠 이사장을 지낸 김병관 의원 정도가 정보기술(IT) 업계 출신이다. 이해찬 대표나 이인영 원내대표, 조정식 정책위의장 등 당 핵심 인사는 대부분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은 “문재인 정부의 혁신 의지는 강하다. 하지만 생태계를 고민해본 사람이 당이나 정부에 부족하다. 과감하게, 요소요소에 필요한 얘기를 할 사람이 지금보다 두 배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특히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청와대에 IT 전문가가 적어 소통이 어렵고, 정책도 때를 놓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 민주당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도 21대 총선 때 경제와 4차산업 분야 전문가를 확충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③표 계산하나?=내년 총선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조직화되지 않은 다수 Vs. 조직화된 소수’의 문제도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문제가 된 ‘타다’ 서비스의 경우 지난해 10월 출범 이후 반년 만에 회원 수가 60만 명을 넘었다. 이는 약 20만 명인 택시기사의 3배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없는 60만 명은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등 상급단체의 지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20만 명보다 정치적 응집력은 미흡하다는 진단이다. 앞서 택시기사들은 지난해 12월 카카오의 차량공유 서비스에 반대하며 주최 측 추산 10만여 명이 모여 실력 행사를 했다.

임주환 원장은 “내년에 선거가 있어 기존 세력의 눈치를 보니까 (혁신이) 안 되는 거다. 방향이 옳다 해도 밀어붙이면 (당장 선거에서) 손해니까 타협을 명분으로 미루기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호·윤성민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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